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24일 국회에서 퇴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노동운동가 시절 ‘철의 여인’으로 불렸다. 금속노조 사무처장이던 2003년 국내 최초로 산별 중앙교섭을 통해 ‘임금삭감 없는 주5일 근무제’ 도입 합의를 끌어내면서 얻은 별명이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단병호 전 의원과 함께 문·단·심으로 불리던 때다. 2017년 대선을 거치면서 심 대표에게 ‘심블리’(심상정+러블리)라는 새로운 애칭이 생겼다. 청년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모습이 공감을 샀다. ‘철의 여인’과 ‘심블리’는 강단 있는 노동운동가 심상정이 진보적 대중정치인으로 진화한 과정을 압축해 보여준다.
심 대표는 진보정당 소속으로는 최초이자 유일한 4선 의원이다. 2004년 총선에서 당선된 이래 줄곧 진보정당의 중심에 있었다. 민주노동당 원내수석부대표, 진보신당 공동대표, 통합진보당 원내대표, 정의당 원내대표, 정의당 대표를 지냈다. 신산한 진보정당 운동과 부침을 함께 겪으면서도 진보적 대중정치인으로 존재감을 키워왔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심 대표의 대권 도전사다. 2007년 대선 때는 당내 경선에서 패했고, 2012년 대선 때는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중도 사퇴한 그는 2017년 대선 때 6.17%를 득표했다.
하지만 심 대표가 가장 돋보인 때는 민주노동당 시절이다. 진보정치의 ‘리즈 시절’로 불리는 17대 국회 때다. 당위가 아니라 팩트와 논리로 엘리트 경제관료들을 추궁하는 진보정치인의 모습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부동산 전문가인 손낙구,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 등이 그를 보좌했다. 그리고 심 대표의 동지이자 경쟁자인 고 노회찬 의원이 있었다. 2018년 7월27일 노 의원 영결식에서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며 울먹이던 심 대표 모습이 선연하다.
심 대표가 24일 퇴임 기자회견을 했다. 4·15 총선 결과에 책임을 지고 1년3개월 만에 중도 사퇴하는 것이다. 기대에 못 미친 총선 결과도 고민거리지만, 세대교체와 정체성 확립은 정의당의 해묵은 과제다. “그동안 높은 산 정상에 홀로 서 있는 사람이라고 느낄 때가 많았다”는 말에서 그간의 고뇌가 느껴진다. 심 대표는 “심상정은 기후정의를 주도하는 정치인으로 거듭나고자 한다”고 했다. 진화한 심블리 정치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