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코로나 추석강령

정제혁 논설위원
추석 연휴 시작을 하루 앞둔 29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서 최진영(76), 차옥순(71) 부부가 딸과 사위, 손주를 보고 세종시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딸과 사위가 특별히 챙겨준 ‘페이스 쉴드’를 쓰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 김창길 기자

추석 연휴 시작을 하루 앞둔 29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서 최진영(76), 차옥순(71) 부부가 딸과 사위, 손주를 보고 세종시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딸과 사위가 특별히 챙겨준 ‘페이스 쉴드’를 쓰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 김창길 기자

예년 같으면 추석 민족대이동이 시작될 때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올해만큼은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는 게 효도하는 길”(정세균 국무총리)이라는 생각이 많아져서다. 코로나19는 고령층에 특히 위험하다. 귀성이 자칫 방역의 둑을 무너뜨리고 부모님 건강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오죽하면 ‘정부가 추석 연휴 기간에 강제로 국민 이동을 자제시켜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6만여명이 동의했을까. 열흘 전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서 86%는 ‘추석 연휴에 가족·친지 간 만남이 감소할 것’ ‘정부의 비대면 추석 권고에 참여할 것’이라고 답했다.

전북 완주의 한 아파트단지 주민들은 지난 15일 ‘아들아 선물은 택배로 부쳐라’ ‘영상통화 OK’ ‘슬기로운 집콕 생활’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고향 방문 자제 캠페인을 벌였다. ‘아들, 딸, 며느리야! 이번 추석에는 고향에 안 와도 된당께~’라는 현수막을 내건 지자체도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당신의 이번주 국내 여행지를 계산해 알려드립니다’라는 게시물이 돌고 있다. 1~9 중 숫자 하나를 고른 뒤 곱하기 3, 더하기 3, 곱하기 3을 해서 나온 숫자 두 개를 더한 숫자의 보기가 당신의 이번주 국내 여행지다. 제주·강릉·부산 등 12개 보기 중 9번 보기가 ‘우리집’인데, 어떤 숫자를 고르건 수식 계산을 마치면 9번 보기가 나온다. 추석 연휴에 고향도, 여행도 가지 말고 ‘집콕하자’는 얘기다.

코로나19가 바꾼 추석 풍경은 이뿐만이 아니다. 벌초 대행서비스 이용 건수가 크게 늘었다. 줌 등 영상대화 앱을 이용해 추석 차례를 비대면으로 치르겠다는 가정도 있다. 정부도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 등 온라인 성묘시스템을 적극 활용할 것을 권고한 터다.

‘조상님은 어차피 비대면, 코로나 걸리면 조상님 대면.’ 요즘 SNS에 유행하는 ‘추석강령’이다. 조상님은 직접 볼 수 없으니 차례는 굳이 모이지 않고 비대면으로 지내도 되고, 대면 차례 고집하다 저승 가서 조상님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국면에 대면 차례를 자제해야 한다는 뜻을 재치 있는 문구에 담았다. 내년에도 ‘비대면 설’ ‘비대면 추석’을 맞지 않으려면 ‘추석강령’을 허투루 들어선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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