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9일(현지시간)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반대하는 시위 참가자들이 ‘DJ들이 그려진 벽화’ 앞에 모여 음악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민스크 | 로이터연합뉴스
벨라루스 시민들 시위 계속
저항곡 틀었던 DJ들 그려
콘서트 열고 댄스 강습하고
‘시위 무대’이자 동력 삼아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저항하는 시민들은 수도 민스크 도심 중앙에 자리한 ‘인민 우정 공원’ 주변을 ‘변화의 광장’이라고 부른다. 이 광장에 자리한 자그마한 건물 한쪽 벽을 채운 벽화 하나.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 DJ 두 명의 모습을 그려놨다. 지난 8월9일 대선 이후 두 달 가까이 시위가 계속되는 동안 벽화는 시위의 상징이 됐다. 당국이 벽화를 지우면, 시위대는 이내 벽화를 되살렸다. 이런 식으로 벽화는 무려 12번이나 새로 그려졌다. 로이터통신은 5일(현지시간) ‘변화의 광장’ 벽화가 벨라루스 민주화 시위의 상징이 된 사연을 소개했다.
벽화는 대선 이후 8월 어느 날 그려졌다. 하늘을 향해 팔을 높게 치켜든 DJ들을 그린 벽화는 변화를 바라는 벨라루스 민심을 대변한다. 대선을 사흘 앞둔 지난 8월6일 야권 대선 후보인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 지지자들은 인민 우정 공원에서 집회를 열려고 했으나 당국이 불허했다.
대신 그날 공원에선 음악 축제가 열렸다. 당시 축제에 참여한 DJ 두 명은 공연 중에 1980년대 옛 소련의 ‘저항의 로커’ 고려인 3세 빅토르 최의 곡 ‘변화를 원해’를 틀었다. DJ들은 사전에 예고하지 않은 곡을 틀었다는 이유로 열흘간 투옥됐다.
시위대는 벽화 앞에 리본과 풍선을 매달았다. 밤이면 콘서트가 열렸고, 때로는 댄스 강습장으로 변했다. 광장 주변 주민들은 창문에 흰색과 붉은색으로 구성된 옛 벨라루스 국기를 내걸고, 시위대와 함께 “벨라루스 만세”를 외쳤다. 인근에 주차된 차들에선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곤 했다. 당국은 벽화에 검은색 페인트를 칠해 그림을 지웠으나, 어느새 그림은 되살아나곤 했다.
광장 인근에 살고 있는 나데즈다(32)는 “(벽화를) 포기했다면, 우리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됐을 것”이라며 “벽화는 광장뿐만 아니라 벨라루스 전체의 상징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당국)이 언제든 우리 집 문을 두드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게 살 수는 없다.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벽화와 더불어 음악은 시위대의 동력 중 하나다. 영국 BBC 방송은 옛 소련 시절 저항곡 ‘변화를 원해’가 벨라루스 시위대의 대표곡처럼 불리고 있다고 했다. 벨라루스에선 여전히 음악이 검열과 탄압의 대상이다. 1990년대 이후 지하 공연장에서 숨어서 노래했던 ‘나이 든 로커들’조차 이번엔 거리 시위에 나와 진압 경찰과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지난달 6일 보도했다. 벽화의 주인공 DJ들의 행동이 이들을 각성하게 했다고 한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기습 취임해 공식 업무를 시작했으며 시위대와 야권 지도자에 대한 탄압 강도를 높이고 있다. 경찰이 구금한 시위대를 고문하거나 구타했다는 고발도 이어지고 있다. 시위대도 물러서지 않고 8주째 주말 시위를 이어갔다. 일요일인 지난 4일 민스크에서만 최대 10만명이 참여한 집회가 열렸으며, 내무부는 시위 현장에서 317명을 체포했다고 5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