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정의론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책은 1971년 출판된 존 롤스의 <정의론>이다. 20세기는 정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시대였다.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전쟁들이 이어졌다. 1·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이 터졌고, 핵폭탄도 사용됐다. 전쟁만큼 상처를 준 대공황이 세계를 삼켰다. 혁명의 시대이기도 했다. 멕시코혁명, 신해혁명, 볼셰비키혁명, 쿠바혁명, 문화대혁명, 68혁명이 터졌다.
최병준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인간을 이렇게 취급해도 되는 것인가?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정부를 불신한 시민들은 반전운동, 생명운동, 민권운동을 벌였다. 마틴 루서 킹 목사는 흑인 인권운동만 한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기본소득 운동을 시작하다 암살당했다. “백인 전용 식당에 흑인들이 들어갈 수 있어도 돈이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이런 사건이 이어진다면 누구나 ‘정의란 무엇인가’를 한 번쯤 물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롤스의 정의론은 이런 시대적 상황과 무관할 수 없다. 롤스의 정의론의 핵심은 차등의 원칙이다. 어느 사회나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이 없을 수는 없다. 대신 불평등을 허용하려면 그 사회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최소수혜자)에게 그 불평등을 보상할 만한 이득을 가져오는 경우에만 정당하다고 했다.
이후 많은 학자들이 정의론을 논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은 현실에서 불공정을 제거해나가는 실제적 정의를 말한다. 센은 과정과 결과를 함께 중시해야 한다고 본다.(<정의의 아이디어>) 센은 마사 누스바움과 함께 불리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좀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하여 역량을 키우도록 해야 한다는 역량 접근법을 내놨다.(<자유로서의 발전>)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동등한 존중과 배려를 강조하며 ‘자원의 평등’을 주장했다.(<정의론>) 마이클 샌델은 정의로운 사회는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고, 사회 전체를 걱정하는 공동선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정의란 무엇인가>) 누스바움은 법과 규칙이 능사는 아니며, 법은 과학의 영역일 뿐만 아니라 인문학의 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공리주의자처럼 효용의 합으로만 세상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시적 정의>)
해법은 각각 다르지만, 정의론에는 사회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있다. 해서 정의는 타인에 대한 의무를 전제하고 있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성과나 업적을 홀로 일궈낼 수는 없다. 과학자들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라는 표현을 종종 쓰는데, 과거의 성과를 토대로 새로운 성과를 냈다는 의미다. 개인의 능력도 타인들이 만들어놓은 환경 속에서 발휘된다. 한마디로 사람은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다.
경향신문 창간 여론조사에서는 한국사회가 불공정하다는 의견이 59%나 됐다. 경제적 불평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기업 간의 원청과 하청의 불평등, 노동자 사이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 실제적 고용인인 플랫폼 사업자와 노동자의 계약은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 공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시험 성적만을 잣대로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자질과 능력을 분별하기도 힘든 1점 차로 인생을 가르는 것을 공정이라 할 수 있을까.
토마 피케티는 이대로 두면 1차대전 직전인 벨에포크 시대(1880~1914년)로 돌아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시대에는 총민간자산에서 상위 10%가 보유한 자산 비율은, 영국에서는 1차대전 직전에 92%를 넘었고, 스웨덴 88%, 프랑스 85%였다.(<자본과 이데올로기>) 자본소득률이 경제성장률보다 크기 때문에 돈이 돈을 버는 것이다. 당시에는 사회적 다윈주의를 내세워 이러한 경제적 약육강식 논리를 정당화했다. 그리고 맞이한 것이 전쟁과 대공황이라는 파국이다.
세계 각국 경제학자들이 만든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wid.world)를 보면 한국도 불평등이 악화되고 있다. 한국의 부의 불평등을 보면, 상위 1%가 전체 부의 12.2%, 10%가 43.3%를 차지한다. 하위 50%의 부는 1.8%다. 한국사회를 100량짜리 설국열차라고 한다면 상위 10%가 앞에서부터 43칸, 하위 50%는 꼬리 2칸에 몰려 있는 꼴이다.
어떤 게 공정할까? 꼬리 칸에서 앞 칸으로 이동하기 위해 “시험으로 대상자를 뽑자”고 요구해야 하나? 아니면 꼬리 칸도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차량 재편성을 요구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