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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매혹적인 20세기 지성의 반추

입력 2020.10.09 11:36

수정 2020.10.09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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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가장 매혹적인 20세기 지성의 반추

수전 손택 : 영혼과 매혹
다니엘 슈라이버 지음·한재호 옮김
글항아리 | 500쪽 | 2만5000원

2004년 12월28일 수전 손택이 세상을 떠났다. 미국에선 손택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동남아를 강타한 쓰나미 보도와 함께 주요 일간지에 대서특필됐다. 바다 건너 한국 언론도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 불렸던 작가이자 평론가”였던 그의 죽음을 전했다. 손택의 저작이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한 지 고작 2년 만이었다.

20세기 지식인 중 가장 매혹적인 인물로 꼽히는 손택. <수전 손택: 영혼과 매혹>은 독일 비평가 다니엘 슈라이버가 손택 사후 펴낸 첫 평전이다. 손택의 일대기를 중요한 분기점에 따라 연대순으로 정리하면서 그가 완성하고자 했던 문학가이자 지식인으로서의 삶을 ‘수전 손택 프로젝트’로 조명한다.

아방가르드 비평가,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를 벌이다 체포된 운동가, 정치적 급진주의자, 스웨덴에서 진지하게 활동했던 영화감독, 세월을 거스르는 젊음을 간직한 지식인, 낭만적 예술가들에게 이끌렸던 소설가. 손택이 열정적으로 수행한 역할들이다. 그는 엄격한 지성주의에 입각해 전후 비평계가 공유하던 틀을 깨부수고 기존에 확립되었다고 믿어졌던 분류를 전복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텍스트에 숨겨진 ‘진정한’ 의미를 찾아낸다는 비평 관행을 비판하며 내놓은 “해석이란 지식인이 예술작품에 가하는 복수”(1966)라든지, 9·11테러 직후 미국 제국주의를 비판하며 파문을 일으킨 “다 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 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2001) 등의 금언은 지금껏 인용되기도 한다.

손택은 고급과 저급, 예술과 예술 아닌 것 따위의 경계를 무화한 특유의 재범주화 작업으로도 주목받았다. 이를테면 1960년대 게이 하위문화에서 가져온 ‘캠프’(키치 영화, 소설, 대량 생산된 장식품에서 세련되고 지적인 즐거움을 끌어내는 모순적 태도) 개념은 소비문화와 오락물로 포화 상태인 미국 문화에서 새로운 미학적 감수성을 드러냈다. <‘캠프’에 관한 단상>이라는 비평 에세이 한 편으로 31세 여성이 지성계의 스타 반열에 오른다.

책은 이처럼 손택의 성공을 전달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손택의 ‘자기창조’ 욕구, 즉 일평생 명성을 열망하고 자신의 삶을 신화화한 시도들을 점검하며 거리 두기를 한다. 저자는 여러 인터뷰와 주변 증언을 바탕으로 위풍당당함을 떠받치던 불안과 두려움,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했던 신랄함과 오만함, 동시에 그들에게 설렘과 희열을 안긴 카리스마 등 손택의 모순적 면모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수전 손택은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머리가 하얗게 세자 다시 검게 염색하면서 일부를 백발로 남겨둔다. 이후 흑발과 대비를 이루며 이마 위로 내려온 백발이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왼쪽 사진부터 1979년 뉴욕 서재에서의 모습, 1993년 보스니아 사라예보 청년극단에서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하는 모습, 1999년 뉴욕에서 촬영한 모습, 2004년 요하네스버그에서 네이딘 고디머와 함께한 모습이다. 글항아리 제공

수전 손택은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머리가 하얗게 세자 다시 검게 염색하면서 일부를 백발로 남겨둔다. 이후 흑발과 대비를 이루며 이마 위로 내려온 백발이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왼쪽 사진부터 1979년 뉴욕 서재에서의 모습, 1993년 보스니아 사라예보 청년극단에서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하는 모습, 1999년 뉴욕에서 촬영한 모습, 2004년 요하네스버그에서 네이딘 고디머와 함께한 모습이다. 글항아리 제공

작가이자 평론가로서 손택의 삶
사후의 첫 평전이자 미적 연대기
명성을 열망했던 비판적 지식인
모순적 진면모 입체적으로 조명

1933년 1월16일 뉴욕의 부유한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난 수전 리 로젠블랫은 5세 때 아버지가 사망한 뒤 어머니 밀드러드가 1944년 참전용사 네이선 손택 대위와 결혼하면서 성을 바꾼다. 16세 때 UC버클리를 거쳐 시카고대에서 학문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후, 17세에 필립 리프를 만나 결혼하고, 18세 때 아들 데이비드 리프를 출산한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부모, 특히 어머니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손택의 어두운 유년시절이다. “인정받지 못하는 외로운 시골뜨기의 유년기라는 감옥에서 탈출한,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스스로를 과장하고 이상화하는 작가의 자아상이 생겨나게” 됐다는 것이다. “아무리 신동이었다고 해도, 자발적으로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를 읽고 이해했다는 주장을 곧이듣기는 어렵다.” 하지만 젊은 시절 지성과 고급문화에 대한 갈망은 훗날 수전 손택이라는 이름으로 경주해간 ‘지성과 관능’ 여정의 밑거름이 됐다.

1963년 첫 소설 <은인>을 출간하며 ‘프로젝트’에 착수한 손택은 초기 대표작으로 꼽히는 <해석에 반대한다>에 이어 <사진에 관하여> <은유로서의 질병> 등 일련의 에세이들을 통해 명성과 아우라라는 복잡한 영향력을 얻는다. 자신의 명성을 활용해 문학인들에 대한 구명 운동을 벌이고,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비판하는 등 실천하는 문학가로서 소임을 다하려 했으며, 롤랑 바르트나 에밀 시오랑 등 비영어권 작가들을 알리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마리아 아이린 포네스, 루신다 차일즈, 애니 리버비츠 등 빛나는 여성 예술가들의 연인이기도 했다.

손택은 9·11 테러 이후 문화사에 대한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진보언론조차 전시 상태를 의식해 비판적 보도를 꺼리는 상황에서 그는 “왜 미국 외교 정책은 언제나 외국인의 생명이 미국인의 생명보다 가치가 덜하다고 상정하는가?”라고 문제 제기한 것이다. 전쟁 사진을 통해 재현의 윤리를 다룬 <타인의 고통>(2003)은 그러한 측면에서 시의적절한 기획이었다.

손택은 에세이집 9권, 장편소설 4권과 단편집 1권, 몇 편의 영화 시나리오와 희곡, 완성되지 못한 수많은 프로젝트를 남기고 타계했다. 과거 암 치료 과정에서 받은 방사선 치료가 원인이 된 백혈병 때문이었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탁월한 부고기사는 손택을 향한 미국인들의 감정이 어땠는지를 보여줬다. “20세기 문단에서 가장 찬양받는 - 그러나 동시에 가장 평가가 엇갈리는 - 존재”였으며, “손택의 이미지는 누구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20세기 대중문화의 산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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