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맥도날드에서 물류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주일에 세 번, 정해진 요일 아침마다 큰 탑차가 들어왔다. 거기에 이 도시가 이틀 동안 소비할 햄버거 재료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그것을 내리고, 검수하고, 건자재실로 옮기고, 유통기한별로 정리하고, 그날 사용할 물건들을 옮기고, 버려야 할 것들을 버렸다. 모두 하는 데 아침 7시부터 점심까지 꼬박 5시간이 걸렸다. 집에 가서 씻고 대학의 강의실로 가거나 연구실로 가거나 했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어느 날 일을 하던 중 메일이 와서 확인해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내가 쓰고 있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글을 잘 읽고 있고 내게 강연을 부탁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강연비로 2시간 기준 40만원 정도를 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이래도 되나’ 하는 마음이 되었다. 내가 맥도날드에서 월 60시간을 일하고 받는 돈이 대략 그만큼이었다. 함께 일하던 대학생 크루에게 “누가 너한테 2시간만 일하면 40만원을 준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하고 물었다. 그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 답을 했다. “형, 그건 거짓말일 거예요. 그런 일이 어디에 있어요.” 나도 그에게 “응 맞아” 하고는, 다시 감자박스를 냉동고에 넣기 위해 일어났다.
나는 그 강연을 하러 가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 밝혀지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제안이 거짓이라 믿고 싶었다. 2시간만 일하면, 아니 나의 글을 읽은 사람들과 만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40만원을 받을 수 있다니. 그러한 노동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지금 나와 그 대학생 크루의 노동이 너무나 슬픈 것이다.
쓰던 글이 <지방시>라는 이름의 책으로 나오고 나도 대학에서 나왔다. 그 이후 나는 쓰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말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 것 같다.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이름으로 강연요청이 온다. 두 달에 한 번이던 것이 한 달에 한 번으로, 그게 다시 일주일에 한 번으로, 그리고 그보다도 조금 많이 늘었다. 이제는 거절할 이유도 없어서 그 제안에 거의 모두 응하고 있다. 나의 글을 읽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무엇보다도 4인가족의 생계를 영위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이제는 2시간에 얼마라는 강연비 제안에 “아아, 그렇군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액수는 40만원보다 적기도 하고 많기도 하다. 그러나 얼마이든 그저 고맙고 미안한 것이다. 그 대학생의 말을 떠올리고 나면 고마움과 미안함이 절반씩이다.
코로나19가 찾아온 이후, 봄부터 여름의 끝자락까지 나는 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다시 살게 됐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는 작가와 독자 간 만남에도 거리를 두게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기회에 조금 더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다만 가을부터는 원격 만남 요청이 종종 온다. 나는 이제 노트북 앞에 앉아 수십개의 분할된 화면들과 만난다. 거기에 자신의 방에 앉은 저마다의 얼굴이 담겨 있다. 왜 그런지, 그 표정에선 두려움과 설렘이 함께 읽힌다. 그들도 나도 이러한 만남이 익숙지 않다. 그래서 실수를 하지 않을까, 나의 진심이 잘 전달될까, 싶은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서는 ‘실수해도 괜찮아요. 저희도 이게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이렇게 만나게 되어 기뻐요’ 하는 다정한 마음이 전해져 온다.
내가 언제까지 말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지속 가능한 삶이라는 확신은 별로 없다. 다만 계속해서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이 거리 두기가 끝나더라도 당신들의 그 다정함은 꼭 기억해 두고 싶다. 코로나19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많은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타인을 위해 마스크를 쓰는 마음도, 모니터 너머의 누군가를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도, 우리가 계속 간직해야 할 소중한 기억들이다. 그리고 쓰고 말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동안 “형, 그런 일이 어디에 있어요”라고 하던 그 목소리 역시 계속 곁에 두려고 한다. 힘겨운 시기이지만 지금의 모든 일들이 감사하다. 그리고 고맙고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