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87년과 당시의 사회 상황을 아주 잘 기억한다. 그래서 지금 떠도는 거짓말에 대해 할 말이 있다. “불법으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에 대해 모든 시민들이 분노했고 그래서 1987년의 6월항쟁으로 터졌다”는 것이다. 거짓말이다. 1987년 3월부터 6월까지 열심히 시위를 구경했던 나는 안다. 화염병 등의 시위 도구를 나르던 여학생들은 심한 고초를 당했고, 현장에서 쇠파이프를 휘두르던 학우들이 잠깐 5분 정도의 ‘해방구’를 만들어 “제헌의회”니 “민주정부”니 하는 구호를 내걸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장사 안 되고 도로가 시끄러워지니 “저놈의 빨갱이들 잡아가라”는 것이 최소한 1987년 5월까지 벌어진 일이었다.
홍기빈 전환사회연구소 이사
길거리에서만이 아니다. 당시에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도 그랬다. 일단 성경 묵상 시간(QT)을 이끄는 자가 민정당 당원이었고, 그 가르침에 따라 순응하는 게 당시의 ‘시민사회’였다. 이 글을 읽는 자들의 절반은 그 시절을 알 테니까, 거짓말하지 말자. 우리 그러고 살았다.
내가 아는 이야기가 맞다면, 가수 나훈아씨는 1987년에 광주에서 희생당한 청년들의 어머니를 달래기 위해 ‘엄니’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1980년 광주의 희생을 보고 가슴에 못이 박힌 부산 가수가 1987년 민주화가 시작되자마자 광주로 가서 이 노래를 녹음하고 자비를 털어 희생자 유족들에게 드리고자 했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당시에는 이 계획이 실패했다고 한다.
나는 1987년을 똑똑히 기억한다. 경제성장과 88 서울 올림픽의 꿈으로 온 사회가 들떠 있었다. 광주니 민주화니 떠드는 이들은 사회의 “적폐”였고, 모두 다 싫어하는 상황이었다. 대중예술계는 더 했다. 어느 배우는 군홧발로 집권한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닮았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이 아예 금지되던 황당한 시기였다. 이불 뒤집어쓰고 숨어 있었던 게 1987년이었으며, 그러다가 잘못해서 자기에게 무슨 ‘불이익’이 닥치면 어떡하는가를 걱정하는 소시민들의 사회가 1987년이었다. 그러니 1987년의 민주화를 “국민 모두”가 이룬 것처럼 말하는 것은 당대인들에 대한 거짓말이다. 내 말이 의심스러우면 1987년 6월29일 전후의 신문 지면을 찾아보면 알 것이다. “좌경 용공” 세력이 불과 몇 주 만에 “국민 모두의 승리”로 칭송되는 황당한 모습이 그 며칠 새에 고스란히 있을 테니까.
나훈아씨도 큰 용기를 냈을 것이다. 당시는 “딴따라”라고 하면 무시당하기 일쑤고 특히 국가 정보기관의 통제 대상이었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명망있는 가수가 광주의 “엄니”들에게 노래를 바치고 테이프를 제작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각오가 서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식자들이 떠드는 이야기, 또 그 영향으로 이른바 ‘시민사회’가 움직이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명분으로 떠드는 “기층 서민”들의 정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기층 서민들의 삶이 나아지는 바가 그 “시민사회”의 담론과 같이 가는지도 회의적이다. 청년 담론이 나온 건 10년이 더 되었다. 그런데 왜 지금의 청춘은 ‘영끌’에 목숨을 걸고 있는가?
나훈아씨는 노래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노래를 듣는 이들의 가슴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마음으로 느끼는 분인 것 같다. 그걸 자기 마음으로 받아 안은 분인 것 같다. 1980년 광주를 보면서는 ‘엄니’들을 생각하며 한없이 흐느꼈을 것 같다.
이렇게 사는 ‘대중예술인’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복잡하고 배배 꼬인 논리 이전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기본적인 진실과 아픔에 공감하고 담아내고 함께하는 분들이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건, 크리스토퍼 말로건 알게 뭔가. 아픈 건 아픈 거고 좋은 건 좋은 거고 신나는 게 신나는 거지.
나훈아씨는 가수로서 지난 반 세기 동안 사람들의 아픔을 안고 끄집어내는 큰 일을 해왔다. 그러면 좌우를 가릴 것 없이 이른바 ‘엘리트’들은 무엇을 했는가? 대충 줄 서서 권력과 명예와 돈이 따라오는 데를 쫓아다니지 않았는가? 그 결과 지난 10년간 기층 70% 사람들의 삶이 도대체 어떻게 나아졌는가? 빌어먹을 상위 20%의 세계. 매체와 대학과 정부기관과 거기에 빌붙은 ‘시민단체’들. 그래서 나훈아씨가 또 노래를 한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