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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과 분단시대 사회학자’ 이효재를 기억하며

입력 2020.10.13 03:00

수정 2020.10.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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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재 선생님이 10월4일 세상을 떠났다. 선생님으로부터 적잖이 배움을 받은 사회학의 후학으로서 선생님의 삶과 학문을 기억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선생님의 이론과 사상에 대해 두 번 글을 썼다. 하나는 경향신문에 2013~2014년 연재한 ‘우리 시대 사상의 풍경’에서 선생님의 페미니즘을 살펴본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국일보에 2018~2019년 연재한 ‘100년에서 100년으로’에서 선생님의 여성운동론을 돌아본 것이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선생님은 평생 여성문제를 열정적으로 연구해온 동시에 여성운동에 적극 개입했다. 선생님의 업적에 대해선 사회학자 김진균이 적절히 논평한 바 있다. 김진균에 따르면, 선생님은 우리 학계에 처음으로 여성이라는 변수를 도입했고, 여성학에서도 역사적 이해를 중시해 토종이론을 만들었으며, 분단 시대의 사회학을 개척했다. 선생님의 학문 세계를 돌아볼 때 공감할 수 있는 평가다.

2003년 교수신문이 펴낸 ‘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는가: 현대 한국의 자생이론 20’에서 선생님은 여성학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선정됐다. 1979년 대학에 입학한 내게 선생님은 성평등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여성학자이자 사회학자였다. 당시 선생님이 펴낸 <여성해방의 이론과 현실>은 베티 프리단 등의 서구 페미니즘을 위시해 제3세계 여성문제와 한국 여성운동에 관한 글과 논문을 엮어 소개했다. 나와 같은 사회학도에게 여성해방의 의의를 가르쳐준 필독서였다.

선생님의 대표 저작은 1989년에 나온 <한국의 여성운동>이다. 이 책에서 선생님은 우리나라 여성이 처한 사회적 억압의 특수성을 주목했다. 식민 지배, 분단 현실, 가부장 사회, 자본주의 산업화가 여성의 일방적 희생을 강제함으로써 여성을 다중적 억압 아래 놓이게 했다는 게 선생님의 분석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선생님은 가족과 사회의 민주화, 무엇보다 성평등과 여성해방을 향한 여성운동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했다.

선생님은 이러한 학문적 문제의식을 실천적 사회운동과 언제나 병행시켰다. 여성운동가로서 선생님은 여성민우회 회장,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등을 맡았고, 늘 최전선에 서서 호주제 폐지운동 등의 여성운동을 이끌었다. 이효재라는 이름은 우리 여성운동가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퇴임 후에는 고향 마산에서 가까운 진해에 자리 잡고 지역여성운동과 평화통일운동을 계속 이어갔다.

더하여 주목할 것은 분단 시대에 대한 선생님의 탐구다. 선생님은 1985년에 내놓은 <분단 시대의 사회학>에서 “몰가치적인 실증주의를 과학적 사회학과 동일시하려는 그 시대적 풍조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 변화를 가족의 민주화나 여권의 평등화를 전제한 가치지향적 입장에서 가족과 여성의 연구를 일관해 왔다”고 자신의 학문을 회고한 다음, “분단으로 인한 피해를 가족과 여성문제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분단국가를 유지하려는 체제로서 형성된 사회구조적 성격의 차원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사회학자 강인순은 분단 시대 사회학에 대한 선생님의 문제 제기가 ‘이효재 사회학’의 핵심적 문제인식이라고 주목한 바 있다. 선생님의 분단 시대 사회학은 강만길의 분단 시대 역사학과 함께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모색한 실천적 학문이다. 선생님은 분단이 가족과 여성, 자아정체성과 사회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분단에 대한 이론적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통일에 대한 정치적 실천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현재의 시점에서 돌아볼 때 개척자적 연구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난 7월 MBC경남에서 선생님에 대한 라디오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데 인터뷰 요청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나 대신 젊은 시절부터 선생님을 잘 알고 있고 선생님의 분단 연구를 깊이 이해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을 추천했는데, 부족하나마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후학으로서 이야기하지 못한 게 아쉽고 후회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까닭의 하나도 뒤늦게나마 선생님의 학문적 성취와 실천적 기여를 기억하며 기리고 싶다는 데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성평등은 노동 존중, 인권 보호와 함께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다. 더불어,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통일 시대의 대비는 민족사의 핵심 과제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와 평화는 우리 사회에 부여된 제1의 시대정신이며, 나를 포함한 이 땅의 지식인들은 이효재 선생님의 생각과 사상으로부터 여전히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삼가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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