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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목소리가 빠진 낙태죄 보도

입력 2020.10.19 03:00

수정 2020.10.1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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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역사적 계기를 마련한 판결이었다. 당시 여성들의 목소리가 온라인 공간에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다. 여성에 대한 처벌과 규제 일변도에서 벗어나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결정할 권리를 갖게 되었다는 안도의 목소리들이었다. 하지만 지난 10월7일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은 헌재 판결의 의의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임신중단(낙태)과 관련해 여전히 여성을 범죄자로 만드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우리 언론의 보도는 이 문제를 여성의 입장에서 다루지 못하는 양상이다. 물론 경향신문이나 한겨레 등 일부 언론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낙태죄와 관련된 언론 보도 다수가 이 사안을 그저 ‘소란’으로 다룬다. 개정안에서 무엇이 다루어져야 했는지 그리고 이 개정안에 문제가 있다면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를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는다. 대신 정부안에 대한 찬반 프레임 속에 논의를 가두어 정파성을 부각시키는 소재로만 사용한다. 이러한 ‘소란’ 속에서 실제 이 개정법안이 통과될 경우 피해를 입을 당사자인 여성의 목소리가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미디어는 임신중단 문제와 관련하여 여성을 항상 죄인으로 재현해왔다. 임신중단을 선택하는 여성은 대체로 드라마의 내러티브상 악녀였다. 반대로 임신중단이 강요되는 경우도 많았다. 계층이 다르거나, 부모가 원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이는 지우면 된다는 말이 쉽게 나오기도 했다. 여성은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 임신중단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경우에만 주체적 선택을 한 것으로 묘사되어왔다. 결국 미디어 재현에서 여성의 입장이 고려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재현 방식은 현실과 조응하면서 임신중단에 대한 부정적 사회적 인식을 구성해왔다.

지난 수년간 여성들이 임신중단 문제에 목소리를 냈던 이유는 명확하다. 임신중단이 여성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 그래서 여성의 선택과 건강권의 문제가 아닌 그저 여성의 범죄 문제로만 여겨졌던 현실 때문이었다. 정부안이 발표된 이후 ‘#나는_낙태했다’ 해시태그와 함께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도 지난 15일 낙태죄 전면 폐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이러한 여성의 경험과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산아제한, 남아선호 등의 이유로 임신을 중단해야만 했던 세대의 여성들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낙태죄 때문에 공식적인 수술의 안전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어떻게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얻게 되었는지를 말이다. 딸에서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로 거슬러 올라가도 임신중단과 관련해서는 불안전, 위험, 죄책감의 문제가 반복되어왔다. 수십년간 전혀 진전되지 못한 상황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피임도구 사용률은 처참할 정도로 낮다. 피임도구의 사용법을 알려주는 교육도 거부되는 현실이다. 낙태죄는 이런 상황에서 여성에게만 죄를 묻는 불합리한 법이었다. 따라서 국가정책이 초점을 둬야 할 것은 여성의 몸을 통제의 대상이 아닌, 재생산권과 건강권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다. 여성의 재생산권과 건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다층적 지원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여성의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를 모두 보장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고민해야 한다.

지금 현재 보도되는 ‘소란’에는 헌재의 판결에서 폐기된 낡은 논의 구도가 답습되고 있다. 언론이 먼저 이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성과 피임, 임신과 임신중단, 출산과 양육 등 우리 사회의 재생산과 관련하여 국가의 어떠한 지원이 필요한지를 논의해야 한다. 언론의 적극적인 의제 설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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