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로 움직이는 '마차'는 동물학대 아닌가요?

탁지영 기자
트위터에 올라온 합천 영상테마파크 마차 사진. 트위터 캡처

트위터에 올라온 합천 영상테마파크 마차 사진. 트위터 캡처

경남 합천군 영상테마파크에서 운영 중인 관람마차에 동물학대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1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을 두고서다.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을 보면, 말 한 마리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의 몸보다 큰 마차를 끈다. 마차에 탄 사람들은 편안히 구경한다. 말 등에는 “전기 마차, 말이 물거나 찰 수 있으니 가까이 오지 마세요”라 적힌 팻말이 붙었다. 누리꾼들은 “제 몸의 몇 배를 끌고 다니는 거냐” “동물학대 관광산업을 폐지해야 한다”고 답글을 남겼다. 해당 글은 1만2000여차례 리트윗됐다.

합천군 문화관광 공식 홈페이지에도 관련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20일 기준 100여건의 항의글이 올라왔다. 한 시민은 “말은 하나의 생명이다. 기름 넣고 엑셀 한 번 밟으면 가는 자동차가 아니다”라며 “아무리 보아도 동물을 전시용으로 학대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올렸다. 다른 시민은 “‘꽃마차가 동물학대’라는 의견이 모아져 지역마다 꽃마차도 운영하지 않는 추세다”라며 “전기마차를 폐지하고 말이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는 시설로 넘겨달라”고 적었다.

합천군에 따르면 영상테마파크에서 운영되는 전기마차는 총 3대다. 말 2마리가 번갈아서 마차를 끈다. 합천군 관광진흥과 관계자는 지난 19일 통화에서 “말 두 마리가 하루에 보통 5시간 정도 일하는데 내내 마차를 끄는 건 아니다. 한 마리가 한 바퀴 돌고 오면 다른 한 마리가 다음 차를 끈다. 평일에는 마차 수요도 없다”고 했다.

합천군 측은 동물학대는 아니라고 했다. 군 관계자는 “몇 년 전에도 비슷한 민원이 제기돼 전기마차로 바꿨다. 사람이 타는 차체는 전기로 운행되고, 말은 방향을 조정하는 역할만 한다”며 “운행할 때도 ‘전기차라서 말은 방향만 바꿔준다’고 안내하고 있다. 마차가 말에 하중을 더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굳이 말이 방향타 역할을 해야 하냐는 지적에 대해선 “민원 내용을 인지하고 군에서도 전기트램 등 다른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며 “마차 업체와의 계약 기간이 끝나는 2021년 연말 즈음 다시 논의를 하려 한다”고 말했다.

합천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캡처.

합천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캡처.

마차가 동물학대라는 비판은 서울 청계천 주변에서 운행됐던 관광마차에서부터 이어져왔다. 지난 2007년부터 청계천 주변에서 마차가 운행되자 동물권단체들은 “말이 토양이 아닌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는 게 말에 대한 학대”라며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청계천 마차는 2012년에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여러 관광지에서 마차가 운행되고 있다. 말들은 사람을 태우고 딱딱한 아스팔트를 달린다. 지난해 동물권단체 ‘하이(HAI)’는 마차의 도로 통행을 허용하는 도로교통법을 개정할 것을 요구하며 서명운동을 벌였다. 하이는 “관련법에서 마차 통행을 허용해 관광 등을 목적으로 한 마차가 오이도, 일산 등 도심뿐만 아니라 해변가·관광지 등 전국 각지 도로에서 어떠한 규제도 없이 운행되고 있다”며 “동물학대를 필연적으로 동반할 뿐 아니라 교통과 공공의 안전에도 중대한 위험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하이에 따르면 마차를 끄는 말들은 보통 경주용이나 승마용으로 뛰다가 퇴역해 퇴행성관절염 등 질병에 노출돼 있다. 말굽에 붙이는 편자가 아예 없거나 닳아서 거의 없는 상태로 시멘트 도로를 달리는 경우도 많다. 이어 “적절한 치료가 진행되지 않아 질병이 악화되거나 부적절한 말굽 관리로 다리를 절개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말은 시청각이 예민한 동물이다. 마차에 설치된 조명과 음악만으로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주변에서 들리는 차량 경적소리, 사이렌 소리, 목소리 등은 말을 더 자극한다. 이로 인해 예기치 못한 돌발 행동을 일으킬 가능성도 높다. 하이는 “마차의 무분별한 도로 통행을 금지함으로써 사람과 동물의 안전을 확보하고 동물의 반복되는 고통을 단절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10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지만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당시 발의안에는 “가축의 힘으로 도로에서 운전되는 차의 운전자가 도로를 통행하는 때에는 일정 기준 이상의 소음을 유발하거나 빛을 방사하지 않도록 운전자 준수사항을 규정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가축이 끄는 차량의 도로 통행을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해외에선 마차 운행을 금지하는 추세다.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은 올해부터 마차 운행을 전면 금지했다. 미국의소리(VOA) 보도에 따르면 마차는 몬트리올시의 오랜 문화유산이자 유명 관광상품이었다. 지난 2018년 말 한 마리가 마차를 끌다 죽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해 시 의회가 2020년부터 마차를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퀘벡주에 있는 말 보호 단체 ‘갤러해드(Galahad)’는 “말들은 하루에 8시간 동안 도로를 다녔다”고 밝혔다. 몬트리올은 말들이 도살장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반 가정에 입양되도록 하는 등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도 했다.

조영수 하이 공동대표는 이날 통화에서 “전기로 운행되는 마차라고 하더라도 흙이 아닌 도로 위에서 음악, 목소리 등에 둘러쌓여 노동하는 것만으로 말은 이미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교대로 마차를 끌게 한다 해도 상시 대기하는 식으로 말을 서 있게 한다면 휴식이라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동물을 영리적으로 관광산업에 이용하는 것 자체가 동물학대”라며 “소비로 인해 누군가는 고통을 받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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