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계부채(가계신용 기준)는 공식적으로 2020년 1분기 말 기준 1611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6% 상승했다. 증가율만 보면 2010~2019년 평균 7.7%에 비해 높지 않은 편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95.9%,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163.1%로 상승했다. 차주 구성을 보더라도 고신용(3등급 이상), 고소득(상위 30%) 차주의 대출 비중이 60~70%대의 높은 수준이다. 유사시 부채상환 여력을 가늠할 수 있는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비율도 47.7%로 양호해 보인다. 통계 작성 기준의 문제, 예컨대 개인사업자대출과 같이 사실상 가계부채로 볼 수 있는 유형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결제은행(BIS) 등에서 발표하는 수치보다 상당히 낮다는 점 등은 일단 논외로 하자. 사실 한국의 가계신용 증가율은 정부의 지속적인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과 가계대출 규제 강화 등의 영향으로 2018년 이후 점차 둔화하는 양상을 보이다가 올해 들어 다시 반등하고 있다. 게다가 가계부채 구조의 질적 개선이라고 할 수 있는 변동금리, 일시상환 방식 위주에서 고정금리, 분할상환 방식으로의 전환 흐름도 올해 들어 다시 역전되고 있다. 2019년 말 원리금 분할상환 비중은 55%, 고정금리대출 비중은 48%까지 높아졌다가 다시 신규대출 기준으로 30% 남짓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일반적으로 가계부채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는 두 가지 측면이 존재한다. 하나는 가계부채가 소비 및 경제성장을 촉진시키는 효과이다. 소위 생애에 걸친 소비평탄화를 위한 소비 목적의 가계차입은 총소비를 증대시키며, 자산 구입 목적의 가계차입도 내구재 소비 증대 등을 통해 총소비 증대에 기여할 수 있다. 반면에 가계부채의 누적은 차입가계의 원리금 상환부담 가중 및 가계의 소비제약 등으로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부정적인 효과가 긍정적인 효과를 상회하는 임계 부채 수준에 대해서는 50%, 80%, 90% 등 여러 수치들이 제시되고 있으나 딱히 기준으로 삼기는 어렵다. 모든 부채가 그렇듯이 미래의 소득이 현재의 원리금 상환부담보다 많다면 부채의 긍정적 효과가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몇몇 국내 연구들에 따르면, 적어도 2010년대 중반 이후에는 가계부채 증가가 소비와 경제성장에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공통된 분석결과이다. 가계부채와 소비 간의 관계가 최근 약화된 건 미래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고, 주택 구입이나 전·월세 보증금 확보, 사업자금 마련 등을 위한 목적의 대출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9월 말 현재 958조원에 이르는 은행 가계대출의 73%가 주택담보대출이라는 건 거시경제 및 금융 안정에도 심각한 위협요인이다. 결국 이러한 불안정성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은 신용의 이용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다.
바젤의 자본규제하에서는 자산의 형태에 따라 자본요구량을 다르게 정하기 위해 위험가중치를 사용한다. 통상 부동산대출이 가장 안전한 대출로 간주된다. 하지만 개별 은행 관점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부동산담보대출도 거품과 과잉부채를 만들어 경제 전체의 불안정을 확대시킬 수 있다. 사적 위험이 아닌 거시적 위험을 감안한 위험가중치 설정이 중요한 이유다. 이러한 견지에서 우리 규제당국은 신용형태별 자본요구량을 정할 때 LTV 60% 이상의 고위험 주택담보대출의 위험가중치를 최대 70%까지 올렸으나 이제 그 범위를 좀 더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 역효과로 나타날 수 있는 수요 위축, 소비자 후생 악화와 불평등 심화에 대한 대응책도 필요할 것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민간부채와 국가부채를 동시에 줄이기는 어렵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부동산 가격 상승에 기댄 경제성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걸 모든 경제주체들, 소위 시장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적극적이고 일관된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