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마니아 마을버스를 말하다
지난 25일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서 만난 이정빈군(17)이 집 앞을 다니는 동대문03번 마을버스 노선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마스크를 잠시 벗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다양한 버스 노선을 외우거나 직접 타보는 게 유일한 취미
친구들이 어떤 버스를 타야 하냐고 전화로 자주 물어봐요
지난 25일 ‘버스 마니아’ 이정빈군(17)을 만난 곳은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동대부고·은석초교 앞 마을버스 정류소다. 촬영에 들어가자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시선은 허공을 맴돌았다.
“사진 찍는 게 어색해서….” 마을버스 이야기를 꺼내자 어색함은 금세 사라지며 말문이 트였다. “오늘은 주말이라 6대가 배차되니까 이번에 버스가 지나가면 10분은 기다려야 할걸요. 주말은 6대로 36분 만에 노선을 한 바퀴 도는 날인데요….”
이군은 콧수염이 막 자라기 시작한 고교 2학년생이다. 그 나이 또래 여느 친구와 다른 건 버스에 빠졌다는 점이다. 이군은 컴퓨터 게임이나 운동도 안 좋아한다. 버스 노선을 외우거나 직접 타보는 게 유일한 취미다. 스마트폰 배경 화면은 버스 뒷좌석에서 찍은 버스 실내 사진으로 해뒀다. “가장 좋아하는 구도예요.”
시간이 나면 장거리 ‘버스 투어’를 떠난다. 마을버스를 갈아타며 시내버스 노선을 따라간다. 학교에서 그의 버스 사랑은 유명하다. “친구들이 어떤 버스를 타야 하냐고 전화로 물어보는 일이 많아요. 그럼 ‘일단 주변에 뭐가 보이는지 말해봐’라고 한 다음에 적절한 노선을 생각해주죠.”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버스를 자주 탈 때부터 버스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중학생 때부터 집 앞을 지나는 마을버스 업체 이름을 딴 ‘휘경운수의 대중교통 블로그’를 운영한다. 버스 시승기나 노선 분석 글, 버스업체 평가 등을 쓴 게 지금까지 300편이 넘는다. 지하철 등과 연계되는 버스 노선 특징을 설명하거나 차량 종류 등을 진지하게 평가한 글이 대부분이다. 버스업체 경영 현황도 관심거리다. “국내 최대 버스업체인 A사가 최근 다른 회사 차량으로 교체했어요. 이쪽 세계(버스 마니아)에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만두기로 했다’는 수준의 큰 뉴스였어요.” 버스 세계를 더 많이, 자세히 알려고 한다. “저는 아직 버스에 대해 많이 아는 것도 아니에요. 100점 만점이면 50점 정도예요.”
이군에게 마을버스 이야기를 들어봤다. 마을버스의 안내방송과 그가 사는 곳과 멀리 떨어진 경기도의 버스 노선 체계, 최근 버스 제조업체의 상황, 그리고 버스기사의 노동환경까지 이야기했다.
‘버스 마니아’인 이정빈군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버스 노선을 살피는 게 취미다. 전현진 기자
■“마을버스, 자세히 보면 다양한 차이”
이군은 마을버스에서 정겨움을 느낀다고 했다. “마을버스는 고지대나 외진 마을을 오가는 교통수단을 가리키는데, 이름 그대로 작은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니 기사님들과도 자주 접하게 되고 집 주변을 오가니 친근하게 느껴져요.”
버스 마니아의 시선에는 마을버스와 시내버스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차종부터 다르다. 마을버스는 9인승 승합차나 25인승 준중형버스 등 상대적으로 작은 차량을 쓴다. 좁고 경사진 도로를 자주 오가기 때문이다. 차량이 작고 도로 사정이 열악하다 보니 승차감에 불만을 표시하는 이들이 많다.
노선이나 운행 거리, 배차 간격도 다르다. 하차 안내 방송을 제작하는 회사에 따라 정거장을 ‘정류소’ ‘정류장’으로 달리 부른다는 점도 다르다.
운행 방식도 차이가 있다. 예컨대 시내버스는 연비를 높이려고 급가속·급제동을 경고하는 연료절감장치를 설치했는데, 마을버스는 도입하지 않았다.
마을버스가 시내버스보다 빠를 때도 있다. 출퇴근 시간엔 버스 중앙차로도 정체에 시달린다. “버스가 전철처럼 이어진다고 해서 ‘버스철’이라 하죠. 마을버스는 골목 안을 다니기 때문에 먼저 도착하는 경우도 있어요.”
지역에 따라 다른 점도 있다. 이군은 전국에서 마을버스가 가장 발달한 곳으로 경기도의 고양·성남·화성을 꼽았다. “고양시는 마을버스가 시내버스 같은 역할을 해요. 마을버스가 중앙차선으로도 흔히 다녀요. 마을버스 의존도가 높은 지역 중 하나예요. 성남에선 큰 저상버스가 마을버스에 들어가기도 했어요. 일반 시내버스랑도 치열하게 경쟁하는 곳이죠. 화성에는 9인승 승합차가 다니는 곳도 있죠. 신도시가 생기면서 노선이 빠르게 생겨나고 있어요.”
서울 안에서도 조금씩 다른 특징이 있다. 서초구 마을버스는 미세먼지 필터를 붙였다. 강동구 마을버스 중에는 시내버스 크기와 같은 것도 있다. 노원구는 노선 길이가 다른 곳에 비해 긴 편이다. “금천구에는 같은 노선인데 버스 번호의 배경색에 따라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고 말고 하는 미세한 차이가 있기도 해요.”
이군은 가본 적 없는 지역의 마을버스 노선 특징도 한참 이야기했다. 평소에도 인터넷 지도 사이트의 ‘거리뷰’ 기능으로 버스가 오가는 길목과 거리를 수시로 찾아본다고 했다.
■“수익성보다 공공성이 중요”
기사 처우·교통약자 편의성·공공성을 기준으로 노선 평가
다니기 어려운 길을 이어주는 마을버스는 공공성이 중요
이군은 업체나 노선을 평가하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고 했다. 기사 처우, 교통약자 편의성, 공공성이다. 이 기준을 갖추지 않으면 대중교통으로서 좋게 평가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최신 차량을 쓰거나 독특한 특징이 매력적이어도 그렇다. “마을버스는 특히 공공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민들이 다니기 어려운 길을 이어주는 게 가장 중요한 역할이죠.”
기사 처우는 열악한 곳이 많다. 배차 간격이 빠듯하거나 정해진 차고지에서 충전소와의 거리가 먼 경우에는 밥 먹는 시간도 부족하다. 유통기한 지난 빵이나 우유를 주는 곳도 나왔다. 공사용 천막을 찢어 화장실을 만든 곳도 비판을 받았다. 마을버스에서 경력을 쌓은 기사들이 상대적으로 더 안정적인 시내버스 업체로 이직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언론에 많이 보도됐지만, 기사님들이 정말 힘들게 일하시는 것 같아요. 격일제로 일하거나 하루 20시간씩 운전해야 하는 곳도 있었어요. 버스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많이 이야기됐던 일입니다. 버스기사의 노동환경이 승객 안전과 만족도에 바로 영향을 주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이군은 마을버스에서 장애인이나 노인 등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솔직히 좀 무리다 싶은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장애인이나 노인들이 편리하게 이용하려면 저상버스가 필요한데, 마을버스가 주로 다니는 좁은 비탈길 등에선 운행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민영제로 운영되는 마을버스가 시설 투자를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어려워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봐요. 누구나 쉽게 이용해야 대중교통이니까요.”
이군은 마을버스 노선이나 운영 체계를 더 탄탄히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마을버스를 더 쉽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결과적으론 교통약자들을 위한 길이라고 했다. 수익보다 공공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뜻의 말이다.
“마을버스 말고 이용할 게 없는 사람이 많아요. 코로나19가 유행해도 외부로 나가야 하는 사람들은 마을버스를 타야 해요. 차량 운행을 줄이면 결국 배차간격이 늘어나 1대의 마을버스에 오르는 승객수는 더 많아져요. 혼잡도가 커질 수밖에 없어요. 효율적인 배차나 노선 조정 등 고민해야 할 것도 많아요. 정작 필요한 노선을 없애는 일도 있어요. 그런 일은 정말 없어져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