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광주 고교생의 5·18 증언

정제혁 논설위원
1981년 2월 광주 석산고 1학년 학생 186명이 국어 과제로 제출한 ‘5·18 작문’이 39년 만에 발굴됐다. 5·18민주화운동 8개월 뒤 작성된 이 작문은 가장 이른 시기의 5·18 집단 증언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1981년 2월 광주 석산고 1학년 학생 186명이 국어 과제로 제출한 ‘5·18 작문’이 39년 만에 발굴됐다. 5·18민주화운동 8개월 뒤 작성된 이 작문은 가장 이른 시기의 5·18 집단 증언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2002년 요절한 문학평론가 이성욱은 1980년 5월 광주를 “80년대 질풍노도의 반역적 에너지가 자신의 존재증명을 위해 언제나 회귀하던 언덕”으로 규정한 바 있다. 80년대 민주화 세대에게 ‘고립된 광주’는 실존을 무겁게 짓누르는 부채의식이었고, ‘대동 광주’는 언제고 기어이 맞아야 할 지나간 미래였다.

광주항쟁은 시민항쟁이었고, 10대 청소년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국이 우리를 부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금남로 시위에 나섰다가 옛 광주노동청 앞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숨진 전영진 열사(당시 대동고 3학년)가 그중 한 명이다. 당시 계엄사 상황일지에는 5월19일 대동고, 중앙여고 학생들의 학내 시위 상황이 기록돼 있다. “금남로에서는 우리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라며 교문을 박차고 나가려는 제자들과 “나가고 싶은 학생들은 나를 밟고 가라”며 만류하는 스승이 끝내 함께 울고 말았다는 증언도 있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는 ‘칼라가 넓은 수피아여고 하복을 입은 누나’가 헌혈을 하러 왔다가 시신 수습을 돕는 장면이 나온다.

부모·형제·친구·이웃이 학살당하는 걸 목격한 청소년에게 5월 광주는 무엇이었을까. 이를 보여주는 자료가 공개된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1981년 초 광주 석산고 1학년생 186명이 국어 과제로 제출한 ‘5·18 작문’에 대한 분석 결과를 3일(학생독립운동기념일) 발표한다. 학생들은 “지식인, 학생층의 자유를 향한 거국적인 힘의 발산” “의거의 성격을 띤 민중봉기”라고 5·18을 규정했다. “자식, 동생이 군인들한테 죽음을 당하는데 안 일어설 사람이 누가 있는가”라고 쓴 학생도 있다. 5·18의 본질을 의젓하게 꿰고 있다.

이들이 작문을 지은 시점은 5·18이 신군부의 유혈 진압으로 막을 내린 지 8개월 뒤다. 언론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5월의 진실에 눈을 감을 때, 진실을 말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던 때다. 어린 학생들이 두려움에 숨을 죽여가며 저마다 목격한 진실을 꾹꾹 눌러썼을 모습에 절로 숙연해진다. 그들은 80년대 초·중반 대학과 사회에 진출, 경향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광주의 진실을 나누었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나의 광주’는 ‘우리의 광주’가 되고, 87년 6월 민주항쟁의 밑불이 되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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