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기준안 공청회
형사처벌 전력 없음·합의 등 감형 사유로 남아 논란
“반성문 대필 업체 등 성착취 관련 산업만 배불릴 것”
A씨는 B양(당시 14세)의 알몸사진을 3개월 동안 1400장 제작한 혐의(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사진들은 약 3개월 동안 A씨의 요구에 따라 B양이 직접 찍어서 보내주거나, A씨가 B양을 만나 직접 찍은 것들이었다. 재판부는 A씨가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상당량의 사진을 B양이 스스로 보냈다는 점을 감안해 A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5개월 동안 28회에 걸쳐 여성들의 하반신을 몰래 촬영한 혐의(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범죄)로 법정에 선 C씨는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다는 점이 고려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됐다.
2일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김영란)가 지난 9월 발표한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화상회의로 진행한 공청회에서 밝힌 과거의 판결 사례들이다.
양형위에 따르면 A씨와 C씨 모두 디지털성범죄에 선고할 수 있는 형량범위가 늘어난 데다 범행이 상습·반복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 형의 가중인자(형량을 높이는 사유)로 적용될 수 있다. 손철우 수석전문위원은 “새 기준안대로라면 A씨는 징역 7년~19년6개월, C씨는 징역 1년6개월~4년이 권고형량 범위”라고 말했다. 다만 감경인자(형량을 낮추는 사유)에 ‘형사처벌을 받은 적 없음’과 ‘진지한 반성’이 여전히 포함돼 있다. 특별감경인자가 아닌 일반감경인자로 분류돼 과거보다는 낮출 수 있는 형량의 폭은 제한적이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진지한 반성은 증명과 측정이 불가능하다”며 “여전히 감경사유로 남아 있는 진지한 반성은 적절한 양형기준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성폭행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은 가수 정준영씨가 진지한 반성을 했다는 이유로 2심에서 5년으로 감형됐다. ‘텔레그램 n번방’ 가담자들도 법원에 반성문을 제출하고 있다.
이윤정 강원대 교수는 “감경요소에서 반성은 반성문의 매수로 판단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반성이어야 하고, 법원에 대한 반성이 아닌 피해자에 대한 반성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피고인이 비용을 들여 유포된 성착취물을 회수하는 등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행위를 특별감경인자로 포함시킨 것에도 문제제기가 나왔다. 한 방청객은 “과거 연예인 비디오처럼 디지털성범죄 영상물은 10년 후에도 ‘고전명작’이라는 이름으로 소환된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디지털장의업체와의 계약서 한 장만으로 형을 감경받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질적 피해 회복이 되지 않는데도, 반성문과 마찬가지로 금력으로 형을 낮추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강수진 양형위 전문위원은 “피해 회복 노력을 양형인자에서 제외하면 피해자 차원에서도 그나마 가능한 회복도 불가능하다는 염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공청회를 지켜본 한 판사는 “피고인이 정말 깊이 반성해 피해자가 탄원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며 “흉악범이더라도 인간이 참회하고 용서할 수 있다는 여지를 아예 차단하는 게 옳은지는 고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