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교육을 진행하면서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를 안내했습니다.” 지난 10월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출석한 CJ대한통운 대리점 사장의 목소리가 당당히 울렸다.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란 택배노동자를 포함한 특고노동자들이 일하다 다쳐도 산재 보상을 받지 않겠다는 일종의 합법적 신체 포기 각서다. CJ대한통운이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가입과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를 받는 게 아니라 CJ와 위탁계약을 맺은 대리점이 이 업무를 담당한다. 얼마 전 과로로 사망한 CJ 택배노동자가 이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를 냈는데 대필로 밝혀졌다. 고인이 일하던 대리점의 사장이 이날 국정감사에 출석한 것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국회의원들은 대리점 사장에게,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 작성을 강요하지 않았냐고, 산재 적용 제외의 의미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냐고 추궁했다. 사장은 자신의 삶과 가족까지 걸면서 결코 강요한 적이 없고, 노동자들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친절하게 설명했다고 반박했다. 이 의미 없는 공방을 듣고 있자니 서글픔과 분노의 감정이 올라왔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진행하는 안전교육에서, 일하다 다쳤을 때 보상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친절히 안내해도 되는 가학적인 법과 제도를 만든 게 누구인가? 국회의원들이 일개 대리점 사장을 앉혀 놓고 산재 적용 제외 신청을 강요하지 않았느냐고 호통치는 모습이 괴이해 보였다. 강요한 범인이 있다면 그건 바로 국회다.
가끔 동네 음식 배달 대행사 사장 중에서 노동자들이 산재보험 가입을 원하지 않으면 어떡하냐는 상담전화를 해온다.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를 받아두지 않았다가 나중에 사고라도 나면 냈어야 할 산재보험료의 5배까지 부담할 수 있다고 안내한다. 이 말을 듣고 무조건 가입시켜야겠다고 생각하는 사장님이 있는가 하면, 무조건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장님도 있다. 여기에 선악이 어디 있고, 강요와 자율이 어디 있나.
울산에선 월 몇 만원의 산재보험료를 납부할지 말지 고민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본인과 가족의 생계, 목숨 값을 월 몇 푼의 돈 때문에 흥정하거나 저울질하지 못하도록 울산에서만큼은 국가가 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각지대란 어느 위치에 섬으로써, 사물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각도를 이른다. 그래서 법과 제도의 작은 허점으로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사각지대라는 푯말을 붙인다. 다수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작은 흠결이 있는 법을 통과시킬 때도 자주 쓴다. 그런데 특고노동자 10명 중 8명은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를 작성한다. 산재보험에 가입한 특고노동자를 찾기가 더 어렵다.
사각지대라는 말 옆에 존재하는 이들을 보자. 5인 미만 사업장, 장애인, 노인, 빈곤층. 사각지대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 작은 문제를 이르는 말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해결하고 싶지 않은 문제이자 주변에 잠깐 치워둬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사람들을 이르는 것이 됐다. 사각지대로 포장된 문제들을 하나하나씩 들춰보자. 거기에 우리가 꼭 목격해야 할 문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