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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기대를 걸게 하는 개혁

현재를 유지하는 것보다 그것을 바꾸는 일이 훨씬 어렵다. 그래서 보수 노릇 하기보다 진보 노릇 하기가 훨씬 힘들다. 진보세력은 늘 중단 없는 개혁을 주문받는다. 그런 개혁은 주로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성공예측도 어렵고 그 실패에 대한 책임도 홀로 감당해야 한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이 점은 교육개혁에도 해당된다. 한국의 교육은 관리의 대상을 넘어 개혁의 대상이다. 현재 체제를 무탈하게 유지하는 교육정책만으로는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현 정부가 검찰개혁만큼 교육개혁에 올인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교육 문제의 대부분이 노동시장구조 혹은 사회양극화에 종속된 현상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오히려 섣불리 개혁하려 들지 않는 편이 옳을지 모른다. 부동산개혁의 후폭풍을 보고 있자면 차라리 교육엔 손대지 않고 놔두는 편이 좋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국가교육위원회 출범이 늦어지는 것도 어쩌면 의도적인 계산이 깔린 것일지 모른다. 모르긴 몰라도, 교육개혁은 사회개혁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낸 후 비로소 시작하는 게 맞다.

이 세상의 개혁이 의도대로 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이론 중 복잡체계 이론(complex systems theory)만 한 게 없다. 이에 따르면 세계라는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복잡하며, 개혁은 늘 예상치 못한 오차를 동반하며, 의도와 다른 체계 내 자기조직화 과정을 경험한다. 특히 교육과 같이 여러 세대에 걸쳐 진행되는 정책의 경우 효과도 느리게 나타난다.

그럼에도 당장 시작해야 할 분야가 있다면 바로 고등교육이다. 왜냐하면 대학은 교육 연쇄고리의 정점에 있기 때문에 단위개혁이 비교적 독립적이며, 그 결과는 곧바로 중등교육 정상화와 입시경쟁 개선 효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 통폐합 차원을 넘어, 종합대학(university) 중심의 고등교육 생태계를 다종화함으로써, 학문을 견인하는 연구중심대학과 더불어 직업노동시장을 선도하는 다종화된 직업중심대학이 동시에 고교교육을 끌어갈 수 있게 해야 한다. 대학이 직업인 양성소가 아닌 것은 맞지만, 졸업생 손에 취업에 필요한 기술을 쥐여주는 것은 분명 대학의 기본적 책무이다.

그런데 대학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공급과 수요 성향의 불일치라 할 수 있다. 대학은 남아돌지만 입학하고 싶은 대학은 일부 명문대에 쏠려 있다. 이것은 최근 쟁점이 된 부동산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주택 총량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아파트를 선호하는 쏠림 현상이 있고, 그중에서도 하이엔드 브랜드 아파트가 매일 집값 최고가를 경신한다. 이런 문제를 대학입학자 수 혹은 무주택자 수를 기준으로 접근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명문 대학과 브랜드 아파트는 미래 욕망의 표현이자 그런 특권 집단에 편입한 사람들이 타자와 자신을 구분하는 범주가 되었다. 교육이 초·중등교육을 거쳐 고등교육으로 나아가면서 배타적 엘리트층을 재생산하는 것처럼, 주택 역시 처음 연립단칸방에서 시작해서 중소규모 아파트로, 종국적으로는 ‘캐슬’ ‘파크’ ‘스테이트’ 등 하이엔드 브랜드 아파트로 진입한 차별화된 시민집단을 형성한다. 대학이 캠퍼스와 동창이라는 배타적 공동경험을 생산하는 것처럼, 거대 아파트 단지들도 그 경계를 사이에 둔 주거의 차별성을 선택적 계급의식으로 확대 생산한다. 소유 양극화를 넘어 정체성 양극화가 진행된다.

명문대의 이너서클 문화나 브랜드 아파트의 선택적 계급의식은 결국 동일하다. 현재 신분을 타자와 차별화하는 증표로 활용하고 재생산하며, 이를 기초로 미래가치를 배타적으로 전유하려 한다. 사회적 신뢰, 공유, 연대 등의 가치는 그 내부 서클 안에서만 작동한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당면한 대학개혁과 부동산개혁은 이런 문화적 계급의식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교육은 철저히 사적 이익에 민감하며, 자녀 세대로의 지위승계와 연결되어 있고, 개혁에 대한 저항이 가장 큰 영역이다. 당연히 진보세력 내에서도 반개혁세력이 다수 포진하며, 강남좌파에 대한 비판도 이런 점을 의식한 결과다. 사익을 포기하지 않는 한 진보세력도 개혁의 대상이다.

개혁은 특권서클 밖의 주민들도 미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데에서 시작한다. 대학개혁은 비수도권 대학들도 생애 미래가치를 보장함과 동시에 향후 격차가 줄어들 것이라는 희망을 공유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아파트 환상을 버리라”고 말하기 전에 비아파트도 미래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는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미래를 포기하게 만드는 정책이 아닌 미래에 기대를 걸게 만드는 정책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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