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눈
박현민 글·그림
달그림 | 46쪽 | 1만9000원
유독 눈이 내리지 않는 한 해였다. 사람들은 조금만 눈이 쌓여도 ‘엄청난 눈’이라며 기뻐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저자는 이런 상상을 했다. “진짜 ‘엄청난 눈’이 세상을 뒤덮는 날이 오면 어떨까. 새하얀 설원에서 친구와 눈싸움도 하고, 눈썰매도 타고, 커다란 눈사람도 만들면 얼마나 재밌을까.”
<엄청난 눈>은 바로 그날을 상상하며 그린 그림책이다.
대체 얼마나 ‘엄청난 눈’이 내린 걸까. 기대감을 안고 첫 장을 펼쳤을 때 먼저 드는 감정은 의아함이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흰 종이인 줄 알았는데, 오른쪽 구석에 손가락 두 뼘 크기의 노란색 문이 눈에 들어온다. 그 문 사이로 빼꼼 삐져나온 삽 하나. 바로 다음 장에서, 두 친구는 그 삽을 이용해 문도 제대로 열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게 쌓인 눈을 퍼낸다. 그다음 장에선 삽으로 모자랐는지 아예 불도저까지 동원한다. 불도저를 타고 위로 더 위로 올라가는 친구들. 그들을 보는 독자들은 비로소 제목의 의미를 깨닫는다. “와 진짜 엄청난 눈이네.”
마침내 탁 트인 설원에 도착한 친구들은 눈싸움도 즐기고 사진도 찍는다. 하지만 눈 오는 날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눈사람 만들기’다. 제 몸의 열 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노란 고깔을 만들고 땀을 닦는 친구들. 그 노란 고깔이 사실 눈사람의 ‘작은’ 코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탄성이 튀어나오게 된다. “와 이거 생각보다 더 ‘엄청난 눈’이구나.” 예상을 뛰어넘고 한계 없이 늘어나는 공간감이 기분 좋은 반전으로 다가온다.
공간과 스케일을 연구하는 저자는 한정된 지면 안에서 ‘엄청난 눈’을 표현하기 위해 흰 종이의 확장성에 주목했다. 무언가를 채워넣는 대신,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흰 종이가 눈이 되게 했다. 흰 눈뭉치로 얼굴을 정통으로 맞았을 때를 표현하기 위해 얼굴을 그리지 않는 식이다.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흰 여백이 ‘눈’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엄청난 스케일을 느낄 수 있는 책이 된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글이 없는 그림책’이라는 점이다. 글은 도입부에서 딱 한 번 나오고, 이후엔 오로지 그림으로만 이야기를 끌고 간다.
하지만 글이 없어도 그림책을 이해하고 즐기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오히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여백이기에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는 여백이 된다. 이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로도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