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깜깜이’ 예산 소소위

서의동 논설위원
정성호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 지난달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결위 소위에서 회의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김영민 기자

정성호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 지난달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결위 소위에서 회의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김영민 기자

국회가 지난 2일 본회의에서 558조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깜깜이’ 심사와 나눠먹기 증액이 되풀이됐다. 지역구 민원이 집중되는 국토교통위, 농림축산해양위, 산자위 등을 중심으로 증액 요구가 쇄도하면서 상임위 예비심사에서만 정부 예산안보다 9조6000억원이 불어났다.

예결위에서는 예산안 제안설명→전문위원 검토보고→종합정책질의→부별 심사 또는 분과위원회 심사→예산안 조정소위 심사→찬반토론의 순서를 거쳐 예산안을 확정한다. 예결위 의원만 50명에 이르다 보니 본격 심사는 여야 의원 15명으로 구성된 예산안 조정소위가 맡는다. 하지만 심사 막바지 국면이 되면 ‘소(小)소위’로 불리는 비공식 협의체가 등장해 최종 조율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졌다. 올해에는 정성호 예결위원장과 여야 간사인 박홍근(민주당)·추경호(국민의힘) 의원 등 3인이 소소위를 구성했다.

소소위 운영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회의 자체가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회의록도 남기지 않는다. 밀실에서 몇 명이 수백조원 예산을 주무르다 보니 손에 ‘떡고물’이 묻는 일쯤은 대수롭지도 않다. 예결위원장인 정성호 의원은 지역구 예산을 6억원 늘렸고, 추경호 국민의힘 간사도 지역구의 개발 예산을 정부안보다 10억원 증액시켰다. 여야 실세들의 ‘쪽지예산’까지 보태져 내년 예산 중 사회간접자본(SOC) 예산만 정부안보다 5000억원이 증액됐다. 실시 계획이 수립되지 않았거나 타당성조사가 끝나지 않은 사업에도 돈이 붙는 ‘닥치고 증액’이 수두룩하다. 이런 민원성 예산만 없어도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이 가능했을 것이다.

추경 편성 때마다 국가채무가 걱정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야당도 이럴 때는 입을 꾹 다문다. 쪽지예산 반영은 의원이 지역구를 제대로 챙긴 증거로 둔갑한다. 쪽지예산을 비판하는 언론 보도를 오히려 반길 정도다. 이러니 소소위의 악습이 개선될 리 없다. 민주당은 당초 ‘일하는 국회법’ 개정 과정에서 소소위 회의록을 남기겠다고 공언했으나 막판에 이 규정이 빠졌다. 예산안 증액파티의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다. ‘정치개혁’에 혹시나 기대했지만 역시나로 끝났다. 이래저래 씁쓸한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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