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짓밟고 내부 권력에 충실한
성주 사드장비 반입 현장의 경찰
보호할 대상은 사드가 아니다
국제정치로 고통받는 국민이다
한국에는 검찰과 경찰의 아성이 있다. 아성인 이유는 국민이 준 권력 속에서 자율적으로 움직이지만 니체가 말하듯 권력에의 의지가 충만하여 위를 향한 치열한 경쟁과 총수를 향한 충성심이 어느 집단보다도 강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신의 존재 근거를 망각하기도 한다. 하여 전자는 헤게모니를 놓지 않기 위해 선출 권력인 정치권과 치열한 전투를 진행 중이다.

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평화연구소
후자는 불꽃이 튀지나 않을까 자기관리 모드다. 그럼에도 성주 소성리에서 지금껏 벌인 그들의 대규모 작전들을 보면 경찰 또한 치외법권의 성역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지난 11월27일엔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일어나는 시점임에도, 600명의 경찰을 투입해 사드공사장비 반입에 반대하는 주민과 시민운동가들을 끌어내고 경찰 장벽을 쳤다. 정부가 1.5단계니 2단계니 고심하는 중이었다. 노인이 대부분인 주민들은 무증상 전파력이 강한 젊은이들이 혹 포진해 있을지 몰라 그들이 진입하지 않도록 정부에 강력히 요청했다.
사드 배치는 권력을 사유화한 앞 정권과 이를 계승한 현 정권,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쥐고자 하는 미국이 합작한 불법행위다. 한국은 졸지에 최대무역국인 중국과 적대관계에 놓이게 됐다. 군사전문가가 된 주민들은 말한다. 미·중 전쟁이 일어난다면 중국은 먼저 소성리 사드포대에 미사일을 퍼부을 것이라고. 문재인 정부는 중국에 대해 사드 문제를 원점으로 돌려놓겠다는 의지까지 보였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민들에게 그토록 강조한 방역을 무시할 정도로 사드기지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경찰은 왜 불법현장을 보면서도 저항하는 백성들을 짓밟고 자신의 내부 권력에 충실하기만 할까. 주민들 삶의 터전을 파괴하지 않도록 자신들이 나서서 사드기지를 봉쇄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들은 적반하장으로 군사작전 펼치듯 국민의 헌법적 권리인 집회·결사의 자유를 훼손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러왔다. 현 정부는 ‘국민의, 국민을 위한 권력기관 개혁’을 국정과제로 정하고, 자치경찰제 전환과 시·도경찰위원회를 통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권력의 속성을 보면, 중앙집권적 조직, 백성에 군림하는 자세, 허약한 인권의식, 해바라기 같은 정권보호 의지가 지배적이다. 그들 선배·동료들이 4·3제주, 5·16군사쿠데타, 부마항쟁, 용산참사, 백남기농민사건 때, 5·18광주의 안병하 경무관처럼 힘없는 백성들 편에 서있었다면 그 신뢰는 무한하지 않았을까.
지금 경찰이 누리는 권위는 백성들의 피와 눈물 덕분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방망이와 총구를 주인에게 돌린 역사를 진정으로 참회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변한 건 없다. 시민과 농민과 노동자들에 대한 폭압적 행태도 여전하다. 정치권력에 따라 표변하는 경찰에 소성리에서의 행패는 역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터다. 더구나 세계 최고의 군사강국 미국을 수호하는 자부심도 크리라.
경찰은 시민에 의해 통제되어야 마땅하다. 수장도 일반 백성이 되고, 권력도 백성의 이익을 보호하는 일에 사용되어야 한다. 주인을 위해서는 정치가보다도 더 현명한 초정치적 판단 아래 그 어떤 강압에도 굴하지 않는 정의의 경찰이 되어야 한다. 범죄를 예방하고, 저질러진 사건을 처리하는 기능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금은 정치적 난민이자 냉혹한 국제정치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먼저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2조 1항은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다. 그들의 보호대상은 불법사드가 아니다.
2017년 9월7일, 현 정권이 잔여사드발사대를 밀어넣기 위해 보낸 경찰 수천명을 상대로 주민들과 함께 온몸으로 싸우며 울부짖을 때, 가장 낮은 계급의 한 경찰이 나에게 “참으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태의 본질을 알고 있었다. 경찰 수뇌부는 자신들의 존재 의미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주민들에게 사죄하거나 아니면 책임지고 옷을 벗는 것이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