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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두이즘

입력 2020.12.11 03:00

수정 2020.12.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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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 새삼 ‘내로남불’이 뜨겁다. 도덕적으로 손가락질 받을 일도 내가 하면 다르다며 핏대를 올린다. 남이 부동산으로 이득을 얻으면 부도덕한 투기가 되지만, 내가 얻으면 의도치 않은 자연스러운 수익이 된다. 남이 이해당사자로부터 술 접대를 받으면 범죄가 되지만, 내가 받으면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친교가 된다. 남이 온갖 자본을 동원해 자녀의 스펙을 쌓아주면 공공성을 해치는 가족 이기주의 전략이 되지만, 내가 하면 자녀에게 더 나은 삶의 기회를 마련해 주려는 헌신적인 부·모성애가 된다. 어쩌다가 한국인은 자신을 사회 도덕에서 벗어난 예외자로 보게 된 걸까?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현대인은 종교, 전통, 습속과 같은 ‘외부의 강제’나 무의식, 충동, 환상 같은 ‘내부의 힘’에 휘둘리지 않고 자율적으로 행위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회학 창건자 중 한 명인 막스 베버는 현대인은 주관적인 ‘목적’을 스스로 설정하고 이를 합리적인 ‘수단’을 통해 추구할 것이라며 이러한 기대를 학문적으로 승인한다. 현대사회학의 문을 연 탤컷 파슨스는 베버의 이러한 목적·수단 도식을 이어받아 자발적 행위이론을 내놓는다. 현대인은 미래에 ‘목적’을 주관적으로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자발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행위자’다. 행위자는 항상 어떤 ‘상황’ 속에 놓여 있기 마련인데, 이 상황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 만들거나 여의치 않으면 통제할 수 없는 ‘조건’으로 남긴다. 목적과 수단이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는 행위자가 속해있는 사회의 규범적 지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러한 자발적 행위이론에 비추어 내로남불을 바라보면 어떨까. 과거와 단절을 추구하는 현대를 살았다는 점에서 한국인도 목적·수단 도식을 통해 행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추구해야 할 목적을 주관적으로 설정하지 못하고 국가가 마련한 민족의 생존과 성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현대사에는 이러한 목적 추구를 가로막는 열악한 상황이 너무나 많았다. 여건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으니 상황 자체가 행위자의 주관적 노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객관적 조건으로 굳어지기 일쑤였다. 국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극단적인 자발적 행위관을 도입했다. 조건을 목적 추구에 도움이 되는 수단으로 뒤바꿀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비합리적 행위라도 괜찮다. 캔두이즘(can-doism), 비상시국에서는 자기 한계를 시험하는 모든 비합리적인 행위가 가능하다!

현대사를 돌이켜보면 한국인은 일상생활을 비상시국으로 만들어 온갖 극단적인 비합리적 행위를 자발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세계 경제 10위권의 자본주의를 건설했다. 누구는 자랑스럽다지만, 이론사회학자 김덕영은 돈과 물질적 부에 대한 무한한 욕망을 추구하는 ‘에리식톤 콤플렉스’가 한국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질타한다. 이 정신을, 박정희의 국가가 주조하고 정주영의 재벌이 구현했으며 조용기의 기독교가 성화했다. 문제는 현세적으로 합리적인 이 정신을 안내하는 캔두이즘이 현세적으로 비합리적인 자발적 행위를 극단적으로 강조한다는 점이다. 민족의 생존과 성장이 위협받는 비상시국이기에 극한의 비합리적 행위를 자발적으로 실천해서라도 모든 조건을 통제 가능한 수단으로 전환해야 한다.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이러한 ‘나 예외주의’는 권력기관과 재벌과 대형교회가 ‘한때’ 활용하던 철 지난 규범이 아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광풍을 타고 온 사회가 항시적인 비상시국이 되면서 더 널리 퍼졌다. 이제 민족 대신 ‘개인’이 전면에 나서 캔두이즘을 실천한다. 각자 자신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온갖 편법, 위법, 초법, 탈법을 서슴없이 저지르면서도 자신은 예외적 존재라며 눈알을 부라린다. 이에서 벗어나려면 극한의 자발적 노력 말고 평범한 일상 실천을 통해서도 자신이 설정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일상생활을 비상시국에서 구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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