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방과후 강사의 위치를 명확하게 알았습니다. 우리가 사회보장제도에 전혀 편입되어 있지 못한 것을요. 10개월 동안 수업을 못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살아갑니까. 저희는 늘 이야기하던 대로 ‘복도의 유령’이더라고요.”
13년째 방과후 수업에서 주산을 가르친 강사 김진희씨(54)는 코로나19 이후 “우리의 위치를 명확히 알게 됐다”고 했다.
김진희씨는 아이들의 정규 수업이 끝나는 오후 12시30분이 되면 학교 복도를 서성인다. 방과후 수업은 정규 수업이 이뤄지는 교실에서 진행되는데, 정규 수업이 끝날 때까지 마땅히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손에는 바이올린 크기만 한 대형 주판과 여벌의 주판, 전날 채점한 아이들 교재 및 사무 용품들이 한가득 들려있다.
“저는 학교에 있을 공간이 없어요. 대기 공간을 만들어 주는 학교도 있지만 교실과 멀리 떨어진 곳이거나 우리만 쓰는 공간이 아니라 눈치가 보이죠. 수업 관련 짐도 많아서 할 수 없이 늘 복도에 서 있게 돼요. 방과후 강사를 ‘복도의 유령’이고 부르는 이유죠.”
방과 후 교육이 시작된 지 26년이 흘렀다. 사교육비를 줄이고 사회 양극화에 따른 교육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1995년 교육개혁안에 따라 시작된 제도였다. 코딩, 외국어, 미술, 악기 등 아이들은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얻었고 학교 안 돌봄도 맡으면서 부모들이 일터에서 안정감을 찾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학교에서 철저히 외부인이다. 수업하러 교실에 들어가면 그 반 담임 선생님이 ‘누구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눈길로 쳐다본다고 한다. 수업 준비를 위해 필요한 컴퓨터나 복사기, 프린터기 등의 사무기기도 쓸 수 없다. 한여름에 해가 안 드는 곳에 주차했더니 ‘그곳은 선생님들이 주차해야 하니 다른 곳에 주차하라’는 이야기가 내려오기도 했다. 아예 주차를 못 하게 하는 학교도 많다.
“어떤 학교는 주차장 공사를 해서 인근 아파트에 주차 협의를 했는데 방과 후 강사들은 협의에서 빼버리더라고요. 학교도 주차 못 해, 아파트도 못 해, 주변으로 배회하는 거죠. 사소하고 치사해서 말하기 싫은 일들이 비일비재하죠.”
방과후 학교는 교육부 고시와 시도교육청의 방과후 학교 가이드라인 ‘길라잡이’에 따라 운영된다. 그런데 내용의 상당수가 ‘학교 여건에 따라’ 혹은 ‘학교장 재량에 따라’ 운영하도록 돼있다. 학교장이 학교 여건에 맞춰 가이드라인과 다른 결정을 해도 그 판단이 적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수강생이 적은 수업은 교육청이 강사 수업료를 보전해주는 소인수 과목 지원 제도가 있다. 하지만 학교마다 이를 지원하기도 하고, 지원하지 않는 곳도 있다. 강사들에게 수업료는 곧 생계의 문제인데 학교에 따라, 상황에 따라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교장 재량법’이라고 말해요. ‘길라잡이에 가능하다고 돼 있잖아요’라고 물어보면 ‘가능하다는 거지 무조건 하라는 건 아니잖아요’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교육청이 마련한 길라잡이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게 학교장 재량 권한이에요.”
‘1년 근무 이후 평가를 거쳐 재계약할 수 있다’라는 규정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면서 수업 자체를 하지 못한 강사들은 평가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그런데 어떤 교육청은 ‘평가를 하지 못했으니 재계약을 할 수 없다’고 하고, 또 다른 교육청은 ‘재계약이 가능하다’라는 입장이다. 김진희씨는 “전국에 13만명의 방과후 강사가 존재하는데 그들을 위한 법이 26년 동안 없었다”며 법제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방과후 교사들은 스스로를 유령처럼 느낀다. 일단 방과 후 강사들은 학교와 근로계약이 아닌 위·수탁계약을 맺는데, 수강료가 낮아 여러 학교에 수업을 나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전속성(한 사업주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정도)이 낮다 보니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한다.
📌[유튜브] 방과 후 학교 26년…법에서도 학교에서도 우린 여전히 ‘유령’
김진희씨는 “방과후 수업은 아이들이 장래의 꿈을 꾸고, 그 역량을 키우는 교육의 한 축을 담당을 했다”며 “방과후 강사들에게 의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권리도 갖게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특히 방과후 강사들은 코로나19 이후 이들은 사회 안전망에서 완전히 벗어난 존재같이 느껴지곤 한다. “사실상 실업 상태예요. 고용보험이 되면 몇 달간 실업 급여라도 나오잖아요. 방과후 강사에게도 사회보장제도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고용보험 제도로 우리를 끌어안을 수 없다면 제도를 보완해야죠.”
코로나19로 수업이 언제 시작될지 알지 못한 채 대기하는 기간이 길어졌다. ‘2주 연기’, 또 ‘2주 연기’ 수업이 연기되는 일이 반복됐다. 다른 일을 할 수 없어 ‘무한 대기’ 상태였다. 김진희씨도 생계를 위해 적금을 깼고 동생에게 손을 벌린 지 몇 달째다. 방과 후 강사 노조 실태조사에 따르면 월평균 수입이 지난해 216만원에서 올해 13만원으로 급감했다.
“방과후 강사는 개인사업자여서 고용보험이 (안 되고),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 등이라는 말이 붙어있지요. 하지만 학교의 계획이 강력하기 때문에 (고용 계약, 업무 처리의 자율성은 없고) 저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학교의) 지시를 받고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 저희는 교육 노동자, 근로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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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종 PD yoopd@khan.kr
한국 사회에서 ‘약한 고리’의 성별과 계층에게 코로나19는 감염병을 넘어선 재난이다. 올 상반기 여성 자살 사망자(잠정치)는 1924명. 지난해보다 7.1% 늘었다. 남성 자살자는 소폭일지언정 감소하고 있지만, 여성은 5월을 제외하고는 10%대의 가파른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https://t.co/afHggxbuMD
— 플랫 (@flatflat38) October 8,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