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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과 사회계약의 복원

입력 2020.12.17 03:00

주요 20개국(G20)이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해 지출한 재정 패키지 규모가 이미 10조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실질가치 기준으로 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3배, 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부흥계획이었던 마셜플랜의 30배가 넘는 수준이다. 매킨지의 보고에 따르면, 22개 OECD 국가의 재정지출 규모는 전년 대비 GDP 비중으로 볼 때 평균 20% 증가했다. 캐나다가 39%, 영국이 38%, 미국이 32% 순이다. 우리나라는 15%로 22개국 중 15번째이다. 그 결과 각국에서 급격히 하락한 GDP에 비해 가처분소득이나 고용이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고 있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우선, 각국 정부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로 일자리 유지를 지원하거나 직접적인 소득 지원을 하고 있다. 전자는 독일·프랑스처럼 노동자가 일하지 못하는 시간을 보조해주는 근로시간 축소 지원과 캐나다와 같이 전체 임금을 보조해주는 방식이 있다. 우리나라도 고용유지, 고용안정 지원금이나 협약 사업장에 대한 인건비 지원 등 일자리 유지를 위한 지원을 확대했다. 반면 미국은 1회성 지원금이나 실업보험 확대를 통해 가계에 직접 지원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2019년 4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유럽의 실질GDP는 14% 하락했으나, 고용은 3%, 실질가처분소득은 5%만 감소했다. 동 기간 미국은 실질GDP가 10% 하락했음에도 실질가처분소득은 오히려 8% 증가했다. 그러나 실업은 10% 증가했다. 우리나라는 전년 동기 대비 기준으로 실질GDP가 2분기 -2.7%, 3분기 -1.1%였고, 고용률은 11월 기준 66.3%로 전년 동월 대비 1.1%포인트 하락했다. 가처분소득은 소폭이나마 상승하였다. 발병 초기 성공적인(적어도 이때까지는) 방역대응과 기민한 재정지원 등에 힘입은 바 크다.

이와 함께 각국은 기본재와 서비스에 대한 소비를 지탱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주거안정 지원이 대표적이다. 가계지출 중 주거비 비중은 OECD 국가들 평균 15%를 넘는 수준이며, 소득 하위 20% 가계의 주거비 비중은 거의 대다수 국가들에서 30%를 크게 상회한다. 이에 세입자 지원을 위해 각국은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퇴거 금지, 임대차계약 연장, 임대료 지원, 임대료 납부 유예, 임대료 인상 금지, 임대료 인하 등이다. 동시에 주택보유자들에게도 압류 중단, 모기지대출 상환 유예 및 지원, 은행대출 지원, 세금 감면 등의 방법으로 지원한다. 이런 정책을 구현하는 구체적 방법과 유형은 국가별로 다양하지만, 주거안정이라는 사회적 기본재의 제공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 원리를 넘어선 가치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각국에서 저숙련, 저소득 계층이 겪는 경제, 사회적 고통과 시련은 심각하다. 미국의 경우 임금기준 하위 20% 노동자의 고용률은 연초 대비 19.2%포인트나 하락한 반면, 고소득 노동자의 고용은 오히려 0.2% 증가했다. 유럽의 경우 저임금 노동자의 실업은 3배가 늘었고, 일시 해고나 노동시간 단축에 처한 노동자들도 30% 이상 증가했다. 우리나라도 상용근로자는 소폭 증가하고 있으나, 임시직, 일용직 근로자 및 자영업에 종사하는 비임금근로자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시에는 경기 회복 후 6개월~1년 정도 시차를 두고 고용이 회복됐으나 이번엔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려면 이보다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산업별 및 고용형태별로도 속도가 상이할 것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위기는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여는 기폭제로 작용하곤 했다. 예컨대, 미국의 사회보장제도는 대공황 이후 만들어졌고, 현대 복지국가의 성립을 상징하는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도 2차 세계대전 때 나왔다. 이제 주주가치와 시장만능론에 기댄 사회계약의 개인화 시대로 돌아갈 순 없다. 하지만 모든 방향으로 난사하는 바주카포 대신 취약한 저숙련 노동자, 여성, 청년계층에 좀 더 화력을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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