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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발견

이맘때쯤이면 텔레비전에서는 시상식이 열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한 해 가장 좋았던 것들을 꼽는다. 올해는 ‘좋았다’고 말할 만한 경험을 하기에는 제약이 많았지만, 대신 ‘처음 겪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일들을 경험했으니 결산에도 나름의 의미가 생긴다. 올해의 장소는 ‘줌’, 올해의 여행지는 ‘구글 지도’, 올해의 음악은 ‘긴급재난문자 경고음’, 올해의 음식은 ‘달고나 커피’, 올해의 향기는 ‘손 소독제’, 올해의 패션은 ‘KF94’…. 이미 일상의 일부가 된 키워드들이지만 왠지 거리를 두고 싶어서 2020년에 묶어둔 채 새삼스럽게 되새겨본다.

복길 자유기고가·<아무튼 예능> 저자

복길 자유기고가·<아무튼 예능> 저자

올해의 조어는 ‘뉴노멀(new normal)’이다. 내가 알고 있던 ‘뉴노멀’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요구되는 새로운 표준이자 절대 쉽게 오지 않을 이상적인 미래였다. 이 때문에 새로운 기준이 적용된 실제 상태를 뜻한다기보다는, 사람들에게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적인 구호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거대한 변수는 나에게 ‘뉴노멀’이 더 이상 미래적인 개념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인류에게 강제되는 규칙을 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변화에는 강제성이 필요하다. 이건 올해의 깨달음이었다. 물론 알고 있었지만 나는 저 원리를 부정했다. 내가 속한 세상에서 강제성이 만드는 변화는 대부분 ‘경제’ ‘혁신’ ‘개발’ 같은 타이틀을 가진 것들이었다. 저 가치들을 우선시하게 되면 새로운 시도보다는 기존 방식이 가장 효율적인 것이라 여기게 된다. 그렇게 ‘경제’가 ‘혁신’하고 ‘개발’될 때마다 사람들은 잔인해졌고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낙오시켰다. 그러고는 그것이 불평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말하는 가치는 너무 작은 걸 대변하고, 너무 복잡한 이해관계에 놓여있다며 ‘변화는 천천히 오는 것’이라 했다.

“누가 주는 기회 말고, 우리가 하면 되죠!” 올해의 드라마인 <출사표>(KBS)의 주인공 구세라(나나)에게 변화란 ‘지금 내가 당장 만드는 것’이다. 불의를 참지 않는 성격 때문에 퇴사만 수십번 반복하던 그는 생계를 위해 구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한다. 학연도 지연도 없이 가진 것이라곤 구청 민원왕 타이틀이 전부인 무소속 20대 여성 후보는 우여곡절 끝에 단 3표 차이로 당선되어 얼떨결에 ‘1년에 90일간 일하고 연봉 5000만원을 받는’ 구의원이 된다.

그간의 정치드라마가 중앙정치의 권력 다툼과 대의를 위한 주인공의 사명감을 그려내는 데 집중했다면, <출사표>는 구의원이라는 자리를 자신이 취업한 직장이라고 생각하며 지역사회의 고질적인 행정 문제를 민원 해결하듯 파고드는 구세라라는 인물의 결단력에 집중한다. 관행, 세력화 등의 이유로 기존 정치인들이 거들떠보지 않았던 약자의 편을 들고, 사회가 끝까지 기억해야 할 일에 책임감을 부여하며, 쉽게 사라지는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정치. 세상 곳곳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던 먼지 쌓인 메아리들을 사람들의 눈앞에 가져와 기어코 변화를 이끌어내는 정치. 구세라의 ‘그냥 하는 거지!’가 만든 변화들은 그와 닮은 이들의 정치 참여로 이어지고, “어리고 경력도 없는 게” “학력도 낮고 경력도 짧은 주제에” “여성 할당제로 겨우 입후보했으면서”라는 비아냥도 보란 듯이 깨부순다.

어떤 사람들에게 <출사표>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낸 올해의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삼국지>를 빌려와 약한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했을 때 유비만 포기를 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유비가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말하는 이 드라마는 지금 한국 국회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들여다보게 만든다.

나는 올해 너무 작아서 남들의 발에 차이던 의제를 끝까지 끌어가는 정치인들을 보았다. 거대한 담론을 형성하고 지지 세력들을 움직이는 ‘정치적’ 정치인들보다 그들에게서 미래를 본다. 올해의 발견이다.

<복길 자유기고가·<아무튼 예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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