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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독립국가

입력 2021.01.23 03:00

친일청산, 바른 역사교육으로
식민지 영구화를 기획한
이토 히로부미의 망령이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1997년 일본 유학을 하면서 그 풍토에서 무언가 유사성, 기시감, 심지어는 향수가 짙게 배어 나옴을 느꼈다. 학문적 언어로부터 엇비슷한 제도·건물 등 이미 삶의 일부로 유전되어 각인된 근대문화의 원형을 목격하고 있었다. 그렇다. 그것은 식민지의 유산이었다. 철거되지 않아 여전히 친숙함을 느끼는 그런 것들이다.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

이처럼 문명의 동질성을 느낄 정도로 양국의 근대체제를 기획·설계·건설한 자는 이토 히로부미다. 일본에서는 혁명과 개혁을 통해, 조선에서는 무력과 회유를 통해. 어느 쪽이든 결국 파멸을 맞았다. 이토에 대한 평가가 학자마다 차이가 있다 해도 자국의 백성 수백만명은 물론 이웃국가도 분단과 함께 수백만의 생목숨을 사지로 몰아넣고, 생존자들에게 트라우마를 겪게 한 야만적 프레임을 설정한 죄과는 소멸되지 않는다.

역사학자 한상일은 이토가 65세에 통감직을 선택한 이유로 세 가지를 든다. 먼저 메이지시대에 확정된 불변의 원칙인 정한(征韓)의 숙원사업을 완성하겠다는 공명심과 교만심이다. 또 유신을 하면서 힘을 합친 동지였다가 노선에 따라 갈라져 죽음을 맞이한 ‘패배자’들에 대한 부채감을 덜기 위한 것과, 정적과의 싸움에서 밀려나고 있었지만 식민지 건설로 정치인생을 총결산하겠다는 명예회복과 권력집착이 있었다(<이토 히로부미와 대한제국>). 그는 완벽하고도 영구적인 식민지를 창출하고자 했다. 제국헌법 제작부터 관료·정당 등 국가 조직을 앞서 꾸려가며 천황제국가를 완성한 경험을 총동원했다.

먼저 분열을 최고의 통치술로 삼았다. 한국은 정치가 부패했으며, 유교적인 낡은 사상과 인습에 절어 한국인이 우수한 능력이 있음에도 이를 발휘하지 못한다고 계몽했다. 따라서 문명화를 위해 고등교육과 보통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고등교육은 간접통치를 위한 전문관료를 길러내는 것이고, 보통교육은 통치에 순응하는 충실한 백성을 길러내는 것이다. 다음은 법과 제도를 통한 지배였다. 지방자치와 식민지의회까지 구상했다고 한다. 조세제도 개혁으로 식민지 운영과 수탈의 판을 깔았다.

이토의 설계는 식민지의 국민국가화였다. 국민의 탄생을 통해 효율성·자율성·영속성을 구축하고자 했다. 법에 의한 국민의 규정·등록·관리·통제다. 최종적으론 일본의 보호국으로 식민지 모국에 귀속시키는 것이다. 병합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천황의 신민이 될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면밀히 살펴본 통찰력이었다. 유럽이 아시아 지배전략으로 쓴 오리엔탈리즘을 변형한 네오 오리엔탈리즘적 식민지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는 빗나갔다. 조선의 젊은 의병에 의해 원대한 야망이 좌절되었다.

이토가 총탄에 맞아 죽은 후, 10개월 만에 국치병탄이 이뤄지고 말았다. 총독은 군 출신들이 잡았다. 무단·문화 통치를 오가며 한반도를 유린했다. 해방 후 한반도는 이토의 유령이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분열은 남북 분단으로 나타났고, 3년의 미군정은 또 다른 제국의 군사지배라는 그물망을 이 땅 위에 쳐놓았다. 이념의 대리전만 해도 원통한데 여전히 외국군이 맘대로 자주국가를 휘젓고 다녀도 이 땅의 위정자들은 수치스러움을 모른다. 이토가 풀어놓은 경찰과 헌병에 의한 무소불위의 사법행위는 말단기관에 불과한 검찰·경찰·안기부를 권력의 최상층부에 걸터앉게까지 했다.

어디 그뿐인가. 이토의 능수능란한 식민전략은 장기간 의식을 왜곡·마비시켜 본질과 현상의 전도마저 초래했다. 가진 재산을 다 팔고, 가솔들과 풍찬노숙하며 오로지 인(仁)과 의(義)를 구현하고자 했던 그들 후손의 빈한함을 마치 능력의 금치산자처럼 바라보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학문의 근간인 역사학에서 독립운동사 하나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현실이 이 나라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으니 누구를 책망하랴. 이토의 식민지 기획이 아직도 이 땅에 횡행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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