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 직권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박 전 시장이 늦은 밤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등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의 주장을 사실로 인정했다.
인권위는 25일 전원위원회를 거쳐 발표한 ‘전 서울시장 성희롱 등 직권조사 결과’에서 “피조사자의 진술을 청취할 수 없어 일반적 성희롱 사건보다 사실관계를 좀 더 엄격하게 판단했다”며 “수위나 빈도가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성적 언동이 있었는지가 관건이므로 성희롱으로 판단하기 충분하다”고 밝혔다. 국가기관이 박 전 시장에 의한 성폭력이 존재했다고 판단해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인권위는 특히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이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유력한 정치인”과 “하위직급 공무원” 사이의 “권력관계”에서 발생한 것이란 점도 분명히 했다.

지난 25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 관계자들이 국가인권위원회의의 정의로운 권고 촉구를 주장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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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주장 대부분 사실로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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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시장이 피해자 A씨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과 손톱을 만진 것도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피해자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증거자료, 박 전 시장의 행위가 있던 당시 피해자에게 들었거나 메시지를 직접 보았다는 참고인들의 진술, 피해자 진술의 구체성·일관성 등에 근거할 때 피해자의 주장은 사실로 인정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이러한 일이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벌어졌음에도 비서실 직원들이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 것은 “비서 업무로 정당화되어 본질이 왜곡되었기 때문”이라며 “돌봄노동·감정노동은 여성에게 적합하다는 인식과 관행이 반영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A씨가 박 전 시장의 업무 외에 샤워 전후 속옷 관리, 약을 대리처방 받거나 복용하도록 챙기기, 혈압 재기 및 명절 장보기 등 사적 영역에 대한 노무를 수행한 것으로 파악했다.
![인권위, 박원순 전 시장 사건 “성희롱은 권력관계에서 발생한다”[플랫]](https://img.khan.co.kr/news/2021/01/26/2021012601002868200242843.jpg)
인권위는 비서실이 직원 정모씨가 A씨를 성폭행한 사건을 인지하고도 정씨가 A씨의 피해 사실을 왜곡·축소해 퍼뜨리는 것을 방치하고 보호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2차 피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서울시에 파견된 경찰이 정씨의 요청을 받고 A씨에게 합의와 중재를 요청한 사실도 드러났다. A씨가 이 사건 조사와 2차 피해 관련 조치를 요구했음에도 서울시는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무대응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권위는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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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내 낮은 성인지 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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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는 서울시장 비서실이 박 전 시장의 성희롱을 묵인·방조한 정황과 피소 사실이 박 전 시장에게 전달된 경위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A씨의 동료 및 상급자들이 속한 비서실이 성희롱의 속성 및 위계구조 등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친밀한 관계’라고만 바라본 낮은 성인지 감수성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성희롱은 권력관계에서 발생한다”면서 “두 사람이 권력관계 혹은 지위에 따른 위계관계라는 것은 명확하고 이러한 위계와 성역할 고정관념에 기반한 조직문화 속에서 성희롱은 언제든 발생할 개연성이 있으며 본 사건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결론냈다.
피해자 측은 인권위의 조사 결과 발표에 대해 “구체적이기보다는 화두를 던지는 편에 가까운 제도개선 권고가 나왔다”면서도 “국가기관에서 책임있게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시간들이었으며 이 시간들이 우리 사회를 개선시킬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피해자 A씨를 지원해온 여성·시민단체로 구성된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은 이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희롱 등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결과 발표에 대한 입장’을 이 같이 전했다. 입장문을 통해 A씨는 “인권위 발표에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와 우리 사회가 변화해 나아가야 할 부분이 언급돼 있다”며 “제 피해사실을 세세하게 적시하는 것보다 국가기관에서 책임 있게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시간들이 더 중요하다. 이 시간들이 우리 사회를 개선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권위, 박원순 전 시장 사건 “성희롱은 권력관계에서 발생한다”[플랫]](https://img.khan.co.kr/news/2021/01/26/2021012601002868200242841.jpg)
공동행동은 인권위가 A씨의 인권침해를 사실로 인정했음을 강조했다. 공동행동은 “보통의 성희롱 사건보다 더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한 결과로도 인정된 사실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인권위는 박 전 시장이 늦은 밤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등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 A씨의 주장을 사실로 인정하며 “피조사자의 진술을 청취할 수 없어 일반적 성희롱 사건보다 사실관계를 좀 더 엄격하게 판단했다. 수위나 빈도가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성적 언동이 있었는지가 관건이므로 성희롱으로 판단하기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공동행동은 2차 가해 중단과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해 포털사이트 등에 A씨의 신상을 공개하거나 음해성 가짜뉴스를 게시한 이들에 대한 구속 수사와 엄중 처벌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A씨의 고소 및 지원요청 사실을 누설한 이들도 직을 내려놓고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위가 이른바 ‘4월 사건’ 이후 서울시 대응에 대해 “2차 피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함에 따라 책임자 징계 등 서울시의 엄중한 조치가 따라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 target=_blank>[플랫]박원순 전 시장 성추행 의혹···예상됐던 경찰의 ‘공소권 없음’, 끊임없이 이어진 2차 가해
경찰 수사 단계에서 영장이 기각돼 디지털 포렌식에 실패했던 박 전 시장의 업무용 휴대전화에 대해서는 “남은 검찰 수사 과정이나 어떤 단계에서라도 포렌식 돼야 한다. 현재 업무용 전화를 보관하고 있는 자는 범죄 증거를 증거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휴대전화는 박 전 시장이 사망 당시 지니고 있던 것으로, 경찰은 관련 수사를 종결한 지난달 말 이 전화를 서울시에 돌려줬다. 서울시는 이를 최근 유족에게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마지막으로 인권위의 권고대로 관련 제도 개선이 실효성 있게 추진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공동행동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는 성희롱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이고, 노동권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사항”이라며 “2019년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서 2차 피해 명시와 예방조치가 의무화되었지만 현장에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실효성 있는 이행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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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지 기자 ming@khan.kr
오경민 기자 5km@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