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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지원금과 정치의 자격

입력 2021.02.01 03:00

수정 2021.02.0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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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여간 재난지원금을 두고 벌어진 논쟁은 여러 면에서 당혹스러웠다. 정책에 대한 토론이 필요한 이유는 국민이 필요로 하는 것을 잘 파악하고 적절한 방법을 강구하여 국민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번 논쟁에서는 보다 나은 결론을 이끌어내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여 승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자기가 하고 싶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주장만을 펼쳐나간 데 있다.

이관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이관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재난지원금의 보편 지급이나 영업 손실의 충분한 보상을 주장한 사람들은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의 재정이 비교적 충분하여 한동안 그렇게 지출만 해도 괜찮다면, 그렇다는 판단을 밝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재정수단도 함께 제시하는 것이 맞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학자나 사회운동가가 아니라 정치인, 그것도 나라를 책임지고자 하는 정치인이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누구나 사람들이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싶겠지만, 때로는 용기 있게 진실을 말하는 정치인이야말로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다.

국가 재정을 걱정하는 사람들 역시 지금의 지원이 충분한 것인지, 부족하다면 얼마나 부족한지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않으려 한다. 이들은 평소에는 통계를 매우 중시하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서만 경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관광이나 운송업처럼 코로나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한계에 온 자영업자들이 어느 순간 도미노처럼 무너진다면 어떻게 될지, 그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져서 정작 코로나는 물러갔는데도 경제 회복에 더 큰 시간과 비용이 들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별다른 이야기가 없다. 그저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라고만 하는데, 그 정도는 국민들도 안다. 문제는 지금이 한정된 재원이라도 더 풀어야 하는 바로 그 시기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열 번에 한두 번은 지갑을 풀자고 해야 그 사람이 닫자고 할 때도 신빙성이 있지, 항상 닫기만 하자고 하는 사람의 말이라면 그것을 합리적 판단보다는 단지 관성적인 태도로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겠는가.

결국 문제를 푸는 것은 정치의 몫이다. 정치란 불가피한 상황에서 벌어진 문제를 제한된 자원과 한정된 시간 속에서 해결해야 할 때 요구되는 기예다. 문제를 해결할 자원과 시간이 언제나 충분하다면, 결과가 아무리 좋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훌륭한 정치의 성과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이야말로 어떤 사람들이 정치인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잘 갖추고 있는지 평가할 수 있는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관료와 행정은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국가를 현상 유지하려는 속성으로 인해 대체로 보수적인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관료가 재정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때 재정지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정치인이라면 관료나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논리를 보여주어야 한다. 향후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거나, 최소한 지금이 절체절명의 시기이니 우선 지출부터 하고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설득하기라도 한다. 그래서 그 책임을 행정에 미루지는 않겠구나 하는 신뢰 정도는 주어야 한다. 관료더러 앞장을 서라고 하는 정치는 분명히 가능하지도 않고 자기 보존만을 꾀하는 정치다. 반대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한 때에 관료에게 발목이 잡혀서 그 핑계를 댄다면, 그 역시 행정을 넘어서는 정치가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결국 국민을 믿고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꼭 필요한 재정지출이라고 한다면, 나중에 그 부분을 메울 필요도 있다고 말해야 한다. 장사하는 국민들이 소득을 감추고 세금을 덜 내려고 하는 이유는, 나라는 늘 걷어가기만 하고 정작 필요한 때에는 도와주지 않았다는 경험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국가와 재벌의 잘못이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 이후 이러한 관념은 확고해졌다. 그 결과 국가와 국민 사이의 신뢰가 깨어지면서 낮은 부담 낮은 복지라는 불신의 체계와 각자도생 사회라는 비극이 탄생했다. 평소 소득을 투명하게 밝혀야 어려울 때 지원도 빨리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신뢰의 체계를 이참에 구축하는 것은 어떨까? 대한민국에서 투명한 조세제도와 제대로 된 복지체계가 구축된 것은 코로나19 위기였다고, 그렇게 우리 국민들은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었다고 후세들에게 말할 수 있으면 참으로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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