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서의동 논설위원
유언비어 이미지/ 김상민기자

유언비어 이미지/ 김상민기자

유럽의 마녀사냥은 15~18세기의 광범위한 기간에 걸쳐 이뤄졌다. 이웃들의 신고로 붙잡힌 마녀들은 특별재판소에서 이단심문관에게 죄를 추궁당하는 과정에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죽거나 살아남더라도 처형되기 일쑤였다. 마녀를 가리는 기준은 야간 집회인 ‘사바트’에 참가했는지 여부였다. 사바트에서는 악마숭배, 유아살해, 인육섭취 등이 저질러졌다고 당시 사람들은 믿었다. 마녀사냥의 극성기인 1560~1660년대는 종교개혁이 한창이었다. 종교개혁의 거센 도전에 위기감을 느낀 가톨릭 교회는 중세적 질서를 지키기 위해 마녀재판과 마녀사냥에 매달렸다. 흑사병을 비롯한 감염병, 경제위기 등으로 흐트러진 민심을 다잡는 데 마녀사냥은 안성맞춤의 제의(祭儀)였다.

마녀사냥으로 대표되는 희생양 찾기는 동서양과 시대를 막론하고 되풀이됐다. 공동체는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차별·배제할 ‘타자’를 필요로 한다. 공동체가 불안정하거나 위기에 처할 때마다 희생양 찾기에 나섰다. 마녀사냥이 ‘무지몽매’의 중세가 아니라 근대로 접어드는 전환기에 더 횡행했던 것은 근대가 차별과 배제를 속성으로 지녔음을 일깨운다. 독일 나치의 ‘유대인 사냥’, 신생 한국의 ‘빨갱이 사냥’, 근대 일본의 ‘조선인 사냥’은 계몽됐다는 근대가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1923년 발생한 일본 간토(關東)대지진 직후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번지면서 6000명의 재일조선인들이 학살됐다. 일본 군경과 자경단들은 길을 가는 조선인들을 붙잡아 ‘주고엔 고짓센(15엔50전)’을 발음하도록 시킨 뒤 어색하면 즉결 처분했다.

지난 13일 규모 7.3의 강진이 강타한 일본에서 “조선인이 후쿠시마 우물에 독을 넣는 것을 봤다”는 글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번졌다. 트위터에는 재일코리안 도둑을 조심하라는 등의 차별적인 글들도 적지 않다. ‘가벼운 장난글에 무슨 호들갑이냐’는 일본인들도 있지만, 간토대지진 때의 광기를 기억한다면 그냥 넘길 수는 없다. 혐한의 농도가 짙어지는 일본 사회에서 ‘광산의 카나리아’처럼 예민해진 재일동포들은 전율했을 것이다. 100년 전의 유언비어가 복제되고 있는 일본의 현실에 유감을 금할 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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