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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러운 ‘인신매매 금지법’

“노예제는 미합중국의 사법권이 관할하는 영역 내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 12월18일 미국 의회를 통과한 수정헌법 제13조의 내용이다. 이로써 노예제도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흑인 노예를 사고파는 방식의 전통적인 거래는 사라졌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을 착취하는 ‘현대판 노예제도’는 이후에도 오랜 기간 계속되었다. 특히 여성과 아동, 이주노동자 등 취약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해온 국제사회는 결국 2000년 11월 이탈리아 팔레르모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합의에 이른다. ‘인신매매, 특히 여성 및 아동의 인신매매 예방·억제·처벌을 위한 의정서’라 불리는 ‘유엔 인신매매 방지 의정서’가 세계 159개국의 동의로 채택된 것이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인신매매 방지 의정서’는 금지하는 인신매매의 ‘최소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피해자를 강제로 납치하거나 돈을 주고 사는 범죄는 당연히 포함된다. 그 이외에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직접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이러한 목적으로 사람을 이동시키는 행위까지 ‘인신매매’에 포함시켜 금지하고 있다. 의정서는 인신매매 범죄를 처벌(prosecution)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신매매를 예방(prevention)하고, 피해자를 보호(protection)하며, 인신매매 대응을 위한 국제협력(partnership)을 4가지 원칙(4P)으로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중요한 기본 협약임에도 한국은 최초 동의자에서 빠졌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대부분의 나라가 동의했는데, 한국 정부는 2015년 193개국 중 170번째로 지각 비준했다. 늦은 출발이 아쉽지만 그동안 누적된 다른 나라의 경험을 반영해 제대로 된 법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국회에 발의된 ‘인신매매·착취 방지와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은 문제가 많다. 법률안에서는 국제협약상 ‘인신매매’를 ‘인신매매·착취’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동안 ‘인신매매’를 사람을 직접 사고파는 극단적인 경우로 축소 해석하는 문제를 개선하려는 시도 같지만, 진단과 해법 모두 잘못되었다.

현행 형법에서 ‘인신매매’를 협소하게 규정해 공백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신매매의 정의를 확장하면 된다. 인신매매를 인신매매라 부르지 못하고, ‘인신매매와 비슷한 것’이라고 정하는 것은 오히려 현장의 혼란을 초래하고 처벌할 대상과 보호할 대상을 모호하게 만들 뿐이다. 처벌규정도 없다. 기존 법이 문제라고 하여 개념을 새로 만들면서 처벌은 기존 법에 맡기는 것은 이상하다. 한발 늦게 따라가는 후발주자 입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국제협력과 관련한 내용도 빠졌다. 여성, 아동, 장애인, 외국인 등 피해자에 따른 맞춤형 지원체계도 부실하다.

개혁은 미사여구보다 원칙을 지키는 것에서 출발한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범죄와 싸우는 과정도 마땅히 그러하다. ‘염전노예’ 사건, 성매매를 강요받는 예술흥행(E-6) 비자를 가진 이주여성, 사업장을 옮길 수 없는 고용허가제(E-9)로 일하는 이주노동자 등 그동안 국제사회로부터 인신매매와 다르지 않다고 비판을 받아온 인권침해 사례를 근절시킬 수 있는 제대로 된 ‘인신매매 방지법’을 만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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