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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 잘 보내기

입력 2021.02.24 03:00

수정 2021.02.2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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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가 왔는지 궁금하다고 검사를 받으러 오신 분이 있었다. 만 50세 여성인데 생리가 1년 전부터 없다고 했다. 나는 갱년기 호르몬 검사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예상보다(평균보다) 젊은 나이에 생리가 중단되었다면 검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 혹은 자궁적출술로 언제 생리가 중단되었는지 모르면 검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분의 경우는 별로 검사할 필요가 없었다. 이 나이대에는 호르몬 검사에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가정의학과 의사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가정의학과 의사

그런데도 이분은 꼭 검사를 받고 싶다고 했다. 호르몬 혈액 검사를 받아서 만약 갱년기가 확실하다면 호르몬 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다.

“안면홍조, 발한, 불면, 무기력, 감정의 기복, 관절통 이런 증상들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특별한 증상은 없어요. 그냥 갱년기가 확실하면 치료를 받고 싶어요.”

증상이 없는데 치료를 받고 싶다고? 나는 갱년기이기 때문에 치료를 받을 필요는 없다고 설득했다. 물론 위에 언급한 증상이 있다면 이런 불편한 증상을 줄이기 위해 호르몬 치료를 할 필요도 있지만, 증상이 없는데 무슨 치료가 필요한가? 갱년기 자체는 치료가 필요한 무슨 질환이 아니다.

여러 가지 힘들고 불편한 증상으로 오시는 분들도 있다. 그분들께는 자궁과 유방 검사를 한 후에 문제가 없다면 호르몬 치료를 권하기도 한다. 그런데 의외로 거부하시는 분들이 있다. 저런 증상들이 너무 힘들다고 하시면서, 그 증상에 딱 맞는 특효약인 호르몬 치료는 거부한다. 왜 그런고 하니, “옛날 조선 시대에는 호르몬 치료 같은 거 없었지만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은 잘 사셨잖아요. 그러니까 저도 안 받을래요.”

인생의 자연스러운 과정인데, 그걸 왜 치료하냐는 거다. 우리 조상들, 인류의 많은 선배 여성들이 겪었던 문제인데 왜 굳이 현대의학에서만 치료하냐는 거다. 물론 일리가 있다.

“꼭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니에요. 사실 갱년기에 느끼는 여러 가지 증상들은 5년에서 10년 정도 지나면서 점차 줄어들기도 하고요. 그런데 앞으로 살아갈 날이 40~50년이에요. 조선 시대에는 평균 수명도 짧고 환갑만 되어도 오래 살았다 하던 시기니까요. 갱년기 이후로 살 날이 길지 않았으니까 큰 문제가 없었을 수도 있는데, 지금은 다르거든요.”

옛날엔 영양이 부실해 초경은 늦고 출산 횟수가 많았으니 50대 중반까지 생리를 하던 여성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초경은 점차 일러지고 출산 횟수는 줄어들어, 대부분의 여성들이 만 50세 전후로 갱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갱년기 자체를 치료해야 할 무엇으로 보지는 않는다. 우리 의사들이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갱년기 자체가 아니라 갱년기에 느끼는 여러 증상, 통증, 불편감들이다. 원인 모를 여러 가지 증상이 호르몬 치료와 함께 좋아지고, 이 시기를 잘 경과해야 ‘갱년기(更年期)’라는 말마따나 인생 후반기를 준비할 수 있다.

하지만 갱년기라는 단어는 조심스럽게 발음해야 한다. 갱년기라는 진단은 대단히 중의적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갱년기라고 이름 붙임으로써 지금껏 설명되지 않던 불편함, 중간자적 몸 상태, 변화해가는 과정에 있는 자신을 비로소 설명해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스스로의 힘이 생기기도 하지만, 실제 다른 원인으로 인한 문제들을 모조리 갱년기로 인한 것으로 치환해버리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갱년기라서 그렇다’는 말은, 어떤 어조로 발음하느냐에 따라 깊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무관심이나 낙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갱년기는 무조건 호르몬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지만, 갱년기에 여성들이 실제로 겪는 고통을 외면하고 자연스러운 인생의 과정이니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도 여성혐오다. 아니 진짜, 앞으로 40~50년 더 살아야 한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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