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역 심사위, ‘비폭력·평화주의 신념’ 오수환씨 편입 신청 받아들여
‘여호와의증인’ 아닌 예비군훈련 거부자도…다양한 ‘양심’ 인정 의미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를 마련하지 않은 병역법이 헌법불합치라는 결정을 선고한 2018년 6월28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권도현 기자
‘여호와의증인’ 신도가 아닌 양심적 병역거부자도 대체복무를 하게 됐다.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비폭력·평화주의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23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병무청 대체역 심사위원회는 오수환씨(30)의 대체역 편입 신청에 대해 지난달 인용 결정을 했다. 오씨는 비폭력·평화주의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다.
오씨는 고등학교 때 수업에서 병역거부 찬반 토론을 한 것을 계기로 군대와 국가폭력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평화주의와 병역거부 신념은 대학 시절 더 굳어졌다. 오씨는 어떠한 이유로도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없다는 자신의 신념과, 효율적인 살상을 위해 지식과 기술을 익히는 병역이 배치된다고 생각했다. 2018년 4월 현역병 입영을 거부하고 지난해 대체역 편입 신청을 했다. 한편 검찰은 오씨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변호사·교수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대체역 심사위는 신청자의 병역거부가 ‘진정한 양심’에 따른 것인지를 심사한다. 신념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일관되게 신념이 유지됐는지 등을 따지는데 이 과정이 녹록지 않다. 오씨는 전쟁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고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행사에 참여한 자료를 심사위에 제출했다. 오씨가 꾸준히 평화주의 신념을 갖고 있었다는 주변 사람들의 진술도 있었다. 심사위는 오씨의 병역거부가 진정한 양심에 따른 것이라고 판단했다.
오씨 외에 기독교 신앙 기반의 평화주의 신념을 가진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편입 신청도 이번에 받아들여졌다. 이는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사례다. 지난해 대체역법이 시행된 뒤 지금까지 대체역 심사위가 편입 신청을 인용한 총 944명 중 이 두 사례를 제외한 942명이 여호와의증인 신도였다.
지난해 10월26일 대체복무제 첫 시행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대전교도소 내 교육센터로 입소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이번 대체역 심사위의 결정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특정 종교에 국한된 게 아니라 비폭력·평화주의와 같은 다양한 신념에 기반한다는 점을 확인한 의미가 있다.
2018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헌법상 양심의 자유가 널리 보장돼야 하고 국가 안보 못지않게 ‘소수자의 목소리’, ‘다양성 존중’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종교 뿐만 아니라 ‘윤리적·도덕적·철학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에 의한 양심상의 결정도 포함했다. 대법원은 특히 “양심은 개인마다 형성돼 유지되고 실현되는 과정과 모습이 서로 다르고, 그 동기와 내용 역시 다양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법원에서 여호와의증인 신도가 아닌 병역거부자는 대부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수사·재판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불이익과 형사처벌을 감수하면서도 양심에 따라 병역거부를 한 것인데 법원이 지나치게 까다로운 기준을 댄다는 지적이 나왔다.
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는 “대체복무제 도입이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법원이 양심을 협소하게 해석하면서 오히려 양심의 자유를 침해해왔다”며 “대체역 심사위의 이번 결정은 다양한 양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대체복무제를 신청하고, 자신의 양심에 대한 자유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군대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오씨도 기자와 통화하면서 “이번 결정으로 양심의 자유가 모든 개인의 권리라는 점을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씨는 “‘총을 들어야 평화에 가까워지느냐, 총을 내려야 평화에 가까워지느냐’는 어렵고 복잡한 문제이고 한국사회에서 계속 고민하며 토론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비폭력·평화주의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양심으로 인정받음으로써 이제는 모든 성역을 열어젖히고 평화가 무엇인지, 어떻게 평화를 이룩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병역거부자의 인권과 군인의 인권이 모두 존중받으면서 군 복무가 끔찍한 경험이나 희생이 아니도록 군대를 개선하고, 또 그에 맞게 대체역을 형평성있게 갖춰나가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한다”고 했다.
대법원이 비폭력·평화주의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형사처벌 여부에 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하급심에서 2명이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대법원이 무죄 판단을 한 적은 없다. 일각에선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가 허용되면 병역기피자가 이를 악용할 것이라는 우려를 했지만, 현재까지 대체역 편입 신청자 중 대체역 심사위가 진정한 양심에 의한 병역거부가 아니라고 판단해 기각 결정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절차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각하한 사례만 1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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