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처음으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비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인정한 첫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병역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수차례 예비군훈련, 병력동원훈련을 소집한다는 통보를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훈련에 불참한 혐의(예비군법·병역법 위반)로 기소됐다.
A씨는 훈련에 불참한 것은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전쟁을 위한 군사훈련에 참석할 수 없다는 신념에 따른 것이므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어릴 적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가 고통을 겪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A씨는 군입대를 거부하려고 했지만 어머니의 설득으로 양심과 타협해 군에 입대하게 됐다. 전과자가 되어 홀어머니에게 불효할 수 없다고 생각해 군에 입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A씨는 다른 병사들로부터 후임 병사가 괴롭힘을 당하다가 탈영하는 사건을 목격하는 것을 계기로 더 이상 양심과 타협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A씨는 제대한 이후 예비군훈련에 참석하지 않았다.
1심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예비군 훈련을 거부함으로써 받게 되는 불이익이 상당함에도 이를 감수하는 것을 보면 “A씨의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소명된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A씨는 예비군훈련을 불참했다는 이유로 총 14회에 걸쳐 고발·기소돼 재판을 받아온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계속되는 수사와 재판으로 인해 안정된 직장을 구할 수 없어서 일용직이나 단기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계를 유지해왔는데, 재판부는 A씨가 예비군훈련을 참석함으로써 받게 되는 불이익보다 예비군훈련을 거부함으로써 받게 되는 불이익이 훨씬 큰데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는 점을 무죄 근거로 삼았다.
2심도 “수년간 조사와 재판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형벌의 위험, 안정된 직장을 얻기 어려워 입게 되는 경제적 어려움 등을 모두 감수하고 있는 점, 피고인은 유죄로 판단될 경우 예비군 훈련을 면할 수 있도록 중한 징역형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점, 예비군 훈련을 대체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이를 적극적으로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점 등을 모두 고려하면 피고인의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하다는 사실이 결과적으로 소명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종교적 신념이 아닌 윤리적·도덕적·철학적 신념 등에 의한 경우라도 그것이 진정한 양심에 따른 예비군훈련과 병역동원훈련 거부에 해당한다면 예비군법 제15조 제9항 제1호와 병역법 제90조 제1항 제1호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며 A씨의 무죄를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