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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과 이재명의 시소게임

어릴 적 놀이터에 가면 시소는 마지막 놀이기구였다. 그네나 미끄럼틀에서 친구들과 놀고 나면 어느새 키가 한 뼘은 자란 느낌이었지만 시소는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 올라 타지 않으면 온종일 저 홀로 기울어 있는 처연함 때문일까, 시소는 도통 친근해지지 않았다. 유일하게 게임을 해야 하는 놀이기구였고, 게임인 이상 시소에선 피 말리는 승부를 벌여야 한다는 압박도 들곤 했다. 그러다 보니 시소게임은 내 의지가 통하지 않았다. 덩치 큰 친구와 한 편이 되면 무게 중심이 우리 쪽에 기울어 이길 것 같았는데, 막상 시소 위에 앉으면 예상은 빗나갔다. 우리 편보다 덩치가 작은 상대편이 몸을 젖히거나 전략적으로 자리를 배치하면 곧장 땅바닥에 엉덩이를 찧곤 했으니. 시소게임은 이처럼 나의 최선이나 능력과 무관하게 상대편의 기습 전략이 희비를 가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구혜영 정치부 선임기자

구혜영 정치부 선임기자

더불어민주당 유력 대선 주자인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의 경쟁은 시소게임을 닮았다. 지난 1년간 두 사람은 접전과 상승, 하락을 오갔다. 올 들어 이 지사가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가며 초반 시소게임의 승기를 굳히고 있지만 이 대표에게도 기회가 없진 않다. 한 재선 의원은 “이 대표는 개인기가 강하고 준비된 상황에서 역량을 발휘하는 스타일”이라며 3월 초 대표직 사퇴 이후를 주목했다. 확연히 다른 스타일은 경쟁의 주목도를 키운다. 이 대표는 4선 의원, 도지사, 국무총리를 거치면서 안정과 신뢰를 갖춘 문전옥답형이다. 이 지사는 지자체장 출신이란 변방 이미지에 실패와 회생 스토리를 지닌 황무지형이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이 대표는 신중하고 합리적이지만 위기 대응에 약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 지사는 과감한 야전 사령관이면서도 ‘영리한 기회주의자’(황상민, <좋은 대통령이 나쁜 대통령 된다>) 이미지를 부각했다. 이들의 시소게임은 지난 대선 경선 후유증,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기본소득 등 상대의 ‘한 방’이 결정타였다.

이처럼 두 사람은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한 시소 위에서 동반 경쟁하며 게임의 흥행을 이끌었다. 그런데 요즘은 위태롭다. 기본소득 이슈를 두고 이 대표는 “알래스카 빼고 시행하는 곳이 없다”고 했고, 이 대표 측은 이 지사를 불안한 좌파라고 공격했다. 이 지사는 이 대표의 기본소득 비판을 ‘사대적 열패의식’이라고 맞받는가 하면, 제3 후보 파장에 대해 “2등이 섭섭할 것”이라고 이 대표를 겨냥했다. 게임을 떠나 한 시소에 탄 게 맞나 싶은 의문이 생긴다.

혹시 상대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면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판일 가능성이 크다. 두 사람은 위기 요인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주류의 비주류, 이 지사는 비주류의 비주류로 둘다 민주당 안방을 차지한 후보가 아니다. 호남의 지지도 양분하고 있다. 또 하나, 4월 재·보궐 선거 직후 등판을 벼르고 있는 여권 제3 후보들은 두 사람 모두를 위협하는 존재다. 제3 후보들은 대부분 범주류이자 86그룹에 속한다. 이들이 레이스에 뛰어들 경우 이 대표는 지지율이 상승하지 않는 한 잊혀지게 되고, 이 지사는 이 대표에 견줘 불확실한 상대인 이들과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이처럼 그다지 각을 세울 게 많지 않은 지지율 1, 2위 후보들이 분열적 방식으로 경쟁하면 여권 전체의 궤멸이 불가피해진다. 여권 내에서 2007년 대선을 언급하는 관계자가 늘고 있는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이다. 한 중진 의원은 “친노(무현) 지지층은 정동영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지 않았다. 정 후보 탓도 있지만 경선 상대 후보들의 책임도 적잖다”고 말했다. 걱정과 우려는 두 사람이 사상 유례없는 경선을 주도해야 한다는 주문으로 이어진다. 다소 이상적이지만 ‘후보는 상대를 품고, 지지층은 균형추를 자임하는 경선’이라는 데 뜻이 모아진다.

다시 시소게임을 생각한다. 내가 땅을 짚어 상대를 허공에 띄워야 이기는 게임. 하지만 시소는 균형의 원리(상승과 하강) 속에서 상대편의 힘(공격과 방어)을 파악해야 게임이 이루어진다. 게임이 되려면 우선, 상대가 같은 시소의 반대편에 앉아 있어야 한다. 이를 인식해야 균형과 힘의 논리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함께 겨루는 것이 시소게임이란 걸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이 대표와 이 지사는 같은 시소에 앉아, 함께 긴장을 겨루고 있다고 생각할까.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민주당의 시소는 한쪽이 기운 채 대선이라는 놀이터에 방치될 수밖에 없다. 시소게임이 나를 낮춰 상대를 올리는 싸움이란 것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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