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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음모론과 정치의 책임

입력 2021.03.01 03:00

수정 2021.03.0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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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에 음모론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팬데믹, 곧 전염병의 대유행은 대표적 위기다. 14세기 흑사병으로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진 유럽에서는 유대인들이 기독교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유대인 공동체 1000곳 이상이 공격당하고 주민들이 학살당했다. 19세기 초 영국인들에 의해 전 세계로 번진 콜레라는 각지에서 ‘콜레라 봉기’를 일으켰다. 1832년 프랑스 파리의 빈민가를 중심으로 콜레라 환자가 대량 발생하자, 정부가 하층민들을 몰살시키려 한다는 음모론이 퍼져나갔다.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에서 묘사한 혁명의 배경엔 콜레라가 있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전 세계에서 1억1000만명 넘게 감염됐고, 250만명 이상 사망했다. 코로나19 원인과 백신 효능을 둘러싼 음모론의 확산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박영환 국제부장

박영환 국제부장

소셜미디어를 통해 코로나19는 인구통제를 위해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와 딥스테이트(숨은 권력집단)가 의도적으로 퍼트렸다는 음모론이 확산됐다. 백신에 들어 있는 나노칩으로 사람들을 조종하려 한다는 주장까지 퍼졌다. 5세대(5G) 이동통신이 코로나19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생성하고 5G 송신탑이 감염을 확산시킨다는 음모론이 퍼지면서 영국과 네덜란드에서는 5G 송신탑 수십곳이 불타는 사건도 발생했다. 미국에선 백신 음모론을 퍼트리는 극우 음모론 집단인 큐어넌에 동조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유럽에서 백신 음모론의 힘은 상당하다. 파리정치대학 정치연구소가 지난 1월20일~2월11일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영국인들을 조사한 결과 ‘정부와 제약사가 짜고 코로나19 백신의 위험성을 덮고 있다’는 응답은 프랑스에서 39%로 가장 높았고, 이탈리아·독일은 32%, 영국 31%로 나타났다. 10명 중 3~4명이 백신 음모론을 믿고 있다는 의미다. 유럽 곳곳에선 여전히 백신 접종 반대시위가 잇따르는 등 백신 불신은 집단면역 형성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팬데믹 시기 음모론이 확산되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다만 코로나19 음모론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소셜미디어와 정치의 역할이다. 정치가 부추기고 소셜미디어가 날개를 달아준 음모론이란 것이다.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온라인을 통한 음모론의 급속한 확산을 가능하게 했다. 미국에서 페이스북, 트위터는 물론 극우 인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팔러, 갭 같은 소셜미디어는 음모론 전파의 플랫폼 역할을 했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자신이 원하는 여론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점은 소셜미디어와 음모론의 결합을 촉진했다. 주류 언론이 팩트체크로 대응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동시에 소셜미디어의 부정적 영향을 제한할 수 있는 합리적 규제 방안 마련은 코로나19 음모론이 던진 우리 시대의 숙제다.

정치의 역할도 돌아봐야 한다. 음모론은 단순한 거짓 정보가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불확실한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이고, 기성 제도가 제공하는 해석을 불신할 때 대안으로서 힘을 얻는다. 정치권과 정부에 대한 불신은 음모론의 토대가 되는 셈이다.

유발 노아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 기고에서 흑사병이나 20세기 초 스페인독감 유행 때와 달리 이번에는 과학이 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과학자들은 원인 바이러스를 찾아내고 이를 퇴치할 백신도 몇달 만에 개발했다는 것이다. 그는 팬데믹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도 엄청난 희생을 막지 못한 것은 결국 정치의 책임이라고 지적한다. 집권을 위해 기성 정치와 미디어에 대한 불신을 부추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50만이 넘는 미국인들이 목숨을 잃게 만든 주범이라 할 수 있다.

한국도 지난 26일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2억명이 넘게 백신 접종을 마쳤지만 음모론은 여전하고, 한국 사회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일부 개신교 선교단체들은 서구의 백신 음모론을 국내에 전파하고 있다.

정치권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신뢰도 공방 등 정치적 논쟁을 멈추고 백신 정책을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 정파적 이해를 위해 백신 음모론과 불안감을 부추기는 3류 정치는 피해야 한다. 대신 정치권은 이번 기회에 백신 개발과 소셜미디어 역기능 제어 등 팬데믹 관련 정책들을 점검하고 한국 사회의 팬데믹 대응 역량을 제고할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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