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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감고 침묵하는 정치, 죽음을 낳는다

입력 2021.03.09 03:00

수정 2021.03.09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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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학생 기자로 일할 때의 일이다. 학교 본관 앞에선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이 40일 넘게 이어지고 있었다. 학교 측에 10번도 넘는 통화 시도를 한 건, 꼭 모든 이해 당사자의 입장이 드러나도록 기사를 쓰라고 알려준 다른 선배의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뜸 “파업과 관련해서 해줄 말이 없다”는 말만으로 학내 갈등이 없는 척하려는 그 뻔뻔함이 싫었기 때문이다. 포털에 관련 사건을 검색하면 기사는 5개도 채 뜨지 않았다. 의도된 침묵이었다. 침묵도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그때 알았다.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채 열흘도 되지 않는 기간 두 죽음이 있었다. 트랜스젠더로 사람들 앞에 나선 김기홍 활동가, 변희수 하사. 모두 스스로를 밝혀 더 많은 사람이 숨지 않도록 용기를 준 사람들이었다. 쉽지 않은 길의 가장 앞에 섰던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그 죽음의 이유를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세계 인권의날, 장애인차별 철폐의날, 여성의날이 있듯 국제 트랜스젠더 추모의날이 있다. 얼마나 많은 트랜스젠더가 우리 곁에서 숨죽이고 살고 있는지, 그러다 조용히 생을 달리했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앞서 성소수자 동료 시민을 응원했던 이들마저도 죽음의 경계를 넘는 이 ‘정상’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만을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민간인 사망 소식에 따로 군의 입장을 낼 것은 없다.” 변희수 하사의 죽음에 군 관계자가 내놓은 말이다. 대학 시절 느꼈던 권력의 침묵을 본다. 의도적으로 상대의 존재를 지워버린 배제를 본다. 변희수 하사는 살고자 했다. “꼭 살아남아서 이 사회가 바뀌는 것을 같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편지에 썼던 그는 매일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었을 테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똑바로 서 있기조차 힘든 그 앞에, 더 높은 곳의 침묵은 폭력일 수밖에 없다.

“차별하지 마라.” “평등하게 대하라.”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누군가에겐 아직도 간절하다. 그 누구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차별금지법은 2007년 처음으로 국회에 등장했지만, 지금까지도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의 지난 입법 시도와 실패의 기록만 보아도 정치가 소수자 문제에 어떻게 침묵해왔는지 알 수 있다. 2013년에는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던 의원들이 반발에 못 이겨 결국 자진 철회하는 일이 있기도 했다. 20대 국회에서는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최소 공동발의 인원 10명을 채우지 못했고, 현재 21대 국회에서도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그러는 동안 성소수자의 인권은 여전히 누군가가 거부하거나 찬성해 줄 수 있는 것 정도로 취급된다. 선거 때마다 성소수자 인권은 ‘보지 않을 권리’와 대치되고, ‘하찮고’ ‘나중에’ 논의해도 될 문제쯤으로 치부당하면서 눈앞에 존재하는 실제 사람은 지워진다.

변 하사의 꿈은 큰 것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일상을 이어나가는 것.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고 개인적 꿈을 이루는 것. 개인의 일상을 무너뜨리는 건 침묵하고, 혐오하는 사회였다. 이제 정치가 답할 때다. 눈감고 침묵하는 정치는 오늘도 수많은 죽음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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