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자본주의 문제 해결하려면 ‘기업’을 활용하라](https://img.khan.co.kr/news/2021/03/12/l_2021031301001370100129891.jpg)
자본주의 대전환
리베카 헨더슨 지음·임상훈 옮김
어크로스 | 408쪽 | 1만8000원
최근 몇년간 기후위기와 환경보호에 대한 사람들의 민감도는 점점 올라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제로웨이스트’ 문화의 확산이다. 제로웨이스트는 ‘포장을 줄이거나 재활용이 가능한 재료를 사용해 쓰레기를 줄임으로써 환경이나 인간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것들을 토지, 해양, 공기로 배출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다.
제로웨이스트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흥해 스타벅스 같은 카페들은 플라스틱 빨대를 종이 빨대로 바꾸거나, 입을 편하게 대고 마실 수 있도록 컵 모양을 바꿨다. 유통업체는 신선식품 배송에 사용되는 냉동팩에 화학 충전재 대신 얼린 물을 넣고, 생활화학제품 업체들은 샴푸·화장품 내용물의 리필이 가능한 리필스테이션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제로웨이스트가 일부 현명한 소비자들만의 취향이라고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대세가 되면서, 기업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해야만 하는 시대다.

2008년 그린피스 활동가들은 유니레버가 비누 재료로 사용하는 팜유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열대우림이 파괴된다고 비판하면서 오랑우탄 복장을 하고 유니레버 런던 본사 발코니에서 시위를 벌였다. 어크로스 제공
주주 이익 극대화에 신경 쓰는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 늘고 불평등 심화
이제 경영진 의무는 공유가치 창출
유니레버·에트나·트리오도스처럼
기업이 주체가 돼야 사회가 변한다
<자본주의 대전환>은 이처럼 변화하고 있는 자본주의 시장의 모습과 그 필요성을 담은 책이다. 저자인 리베카 헨더슨은 하버드대학교가 특정 학과에 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연구·강의할 수 있도록 임명하는 특별교수 25인 중 한 명이다. 책은 헨더슨이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자본주의 다시 상상하기’라는 제목으로 한 강의 내용을 토대로 쓰였다. 그는 환경보호나 고용안정 등의 이슈와 기업 성장이 서로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문제 해결을 위한 주체를 정부나 소비자가 아닌 ‘기업’으로 놓고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현재 자본주의 체제가 맹목적인 이익 추구로 귀결되는 주주자본주의를 중심에 놓음으로써 여러 부작용이 발생해왔다는 점부터 지적한다. 주주자본주의 신봉자인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주주 가치의 극대화가 기업 경영진의 유일한 의무라고 주장했다. “기업의 유일한 사회적 책임은 자신의 자원을 이용하여 이익을 증대시키는 활동에 임하는 것이다”라는 그의 발언은 유명하다. 기업이 주주 이익에만 신경 쓰는 동안 화석연료 사용량과 온실가스 배출량은 점점 늘어났으며, 한 국가 내에서의 불평등도 유례없이 심화됐다. 저자는 이대로면 기업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기업 그 자체가 의지하고 있는 제도를 파괴하는 결과만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짚는다.
헨더슨은 새로운 자본주의로 가는 길을 다섯 단계로 제시한다. ‘주주 우선주의’ 대신 경제적 가치와 공동체의 사회적 가치를 조화시키는 ‘공유가치 창출’을 기업 목표로 설정하는 것이 첫 단계다. 두 번째로는 그 목적을 구성원 모두가 자각하고, 더 많은 자율권을 부여받는 ‘목적 지향 기업’으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 그다음으로는 지속 가능한 경영과 관련된 지표들을 넣어 ‘재무 재설계’를 해야 한다. 현재 기업 재무제표만으로는 기업이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 비용을 더 쓰는 것이 영업이익 감소로 잡히기 때문에, 기업마다 적용할 수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지표를 도입해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 단계로는 생태적·사회적 비용을 치르지 않는 무임승차자들을 방지하기 위해 업계 내에서의 ‘자율 규제 도입’, 다섯 번째로는 ‘시장과 정부의 힘의 균형’이 필요하다.
책에서는 자본주의 대전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례들도 소개한다. 세계 최대 차 브랜드인 립톤을 보유한 유니레버는 환경파괴를 방치해 낮춘 가격으로 다른 업체와 경쟁하는 대신, 가격을 5% 올리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차를 재배하는 방법을 택했다. 유니레버는 차를 공급하는 케냐 소작농들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농부들에게 가지치기한 나무를 땔감으로 쓰지 말고 퇴비로 써서 땅의 생산력을 올리도록 했다. 또 소작농들을 위해 농약 살포 때 입을 수 있는 개인 보호 장비도 지급했다. 그 결과 차 품질이 개선되고 수확량도 5~15% 늘었다. 립톤 차를 구매하는 것이 올바른 일에 동참하는 일이란 의식을 주는 마케팅을 통해 판매량까지도 끌어올렸다.
그 밖에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직원들이 일에 대한 애착을 더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한 에트나 보험사,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가들의 시도를 지원하는 트리오도스 은행 등의 사례도 들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현재의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책에서 소개하는 시도와 주장들이 근미래에 실현 가능한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업이 변하지 않고서는 지금 우리가 처한 거대한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시도할 필요가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게 전달된다. 각자 자리에서 “비행기를 덜 타고 자동차 운행을 줄이겠다고 결심하거나, 직원을 잘 대우하는 기업의 제품만을 구매하려고 노력”하는 등 당장 의미 있는 일을 시도하라는 저자의 조언은 새길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