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으로 첫 정상회의…‘중국 언급 없이 중국 견제’ 성명
중 ‘백신외교’ 맞서 1억회분 인도·태평양지역에 배급 합의
“군사동맹·나토 아니다” 수위 조절…중 경제 보복 등 ‘난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함께 사상 첫 쿼드 정상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했다. 미국, 일본, 인도, 호주 4개국의 비공식 안보협의체인 쿼드는 바이든 정부 아시아 전략의 핵심축으로 부상했다.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만들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바이든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본격화된 것이다.
쿼드 정상들은 회의 발언과 공동성명에서 중국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쿼드의 정신’이라는 5개항의 공동성명에는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 다수다. 이들은 성명에서 “우리는 인도·태평양과 그 너머에서 안보와 번영을 증진하고 위협에 맞서기 위해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규범에 기초하고 국제법에 뿌리박힌 질서 증진에 전념한다”고 밝혔다. 또 “우리는 법치, 항행 및 영공 비행의 자유, 분쟁의 평화적 해결, 민주적 가치, 영토적 온전성을 지지한다”고 명시했다.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으로 인한 분쟁, 인도·중국의 국경분쟁, 대만·홍콩 문제 등 중국과 관련한 이슈들을 연상시킨다.
쿼드 정상들은 최대 당면 현안인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 접근권 확대를 위한 구체적 협력 방안에 합의함으로써 인상적인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4개국 정상들은 미국의 기술과 미국·일본의 자금력, 인도의 생산 능력, 호주의 수송 능력을 결합해 내년 말까지 코로나19 백신 1억회분을 인도에서 추가 생산해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에 보급하기로 했다. 시노백 백신을 앞세운 중국의 ‘백신외교’에 대한 대응 성격으로 풀이된다.
이들은 기후변화 워킹그룹과 핵심 신흥기술 워킹그룹도 구성키로 했다. 백악관은 핵심 신흥기술 워킹그룹에 대해 기술표준 협력, 통신장비 공급처 다변화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5세대(5G) 통신망 구축을 둘러싼 미국의 중국 배제 전략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에 의해 제기된 도전에 대해 인도, 일본, 호주 지도자들과 논의했다”며 “오늘은 미국 외교에 중요한 날”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정상회의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주재한 다자회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다만 “쿼드는 군사동맹이 아니다” “새로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아니다”라며 수위를 조절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회의는 쿼드가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서 핵심이 될 것이란 명백한 신호를 보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미국 내부에서도 쿼드의 전망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필립 데이비드슨 미군 인도·태평양사령관은 지난 9일 상원에서 “쿼드는 인도·태평양 지역 민주주의의 다이아몬드”라며 “쿼드는 단순한 방어나 안보 재조정을 넘어 국제 경제, 통신이나 5G 같은 핵심 기술, 국제질서 협력을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쿼드의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평가도 많다. 회원국들이 중국의 영향력 억지에는 공감하지만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고 각국별 정책 우선순위도 달라 단일대오 형성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일본 석좌는 12일 포린폴리시 기고에서 백신 합의를 “대담한 첫 움직임이자 영리한 발걸음”이라면서도 다음 단계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장 바이든 정부는 국내 반발 때문에 중국의 경제적 확장을 견제하기 위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도 재가입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그는 지적했다. 티머시 히스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CNN에서 쿼드가 중국 견제를 강화하면 중국은 경제 보복에 나설 것이고 이는 인도, 호주, 일본에 어려움을 안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