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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법률가의 한계와 정치의 사법화

입력 2021.03.15 03:00

수정 2021.03.1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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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병원에 입원하면 담당 의사를 대하는 자세가 예사롭기 어렵다. 보기만 해도 꾸벅, 말 한마디만 들어도 꾸벅, 그저 죄인이라도 된 양 설설 기게 된다. 거짓된 겸손이 아니다. 절박한 마음에 진심으로 그렇게 대할 수밖에 없다. 의뢰인이 변호사를 대하는 태도도 비슷하다. 그나마 변호사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꿀 수라도 있지만, 판사나 검사 앞에 서게 되면 그럴 자유도 없다. 공권력은 독점적이다. 모든 공권력 앞에서 당장 일을 처리해야 할 입장에 처한 사람들은 우선 권력자에게 쩔쩔매면서 그가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한 존숭을 보일 수밖에 없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문제는 이것이 권력관계에서 아만(我慢)을 낳는다는 것이다. 아만은 초심을 잃게 만든다. 어느덧 내가 잘나서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마음이 든다. 권력은 위임받은 것이건만, 어느 날부터 내 것이라는 의식이 자리 잡는다. 이런 아만은 치명적이지만 쉽게 떨쳐 버릴 수 없다.

법률가가 배우고 익힌 것은 법에 정한 요건의 해석과 적용이다. 정의니 시비곡직이니 하는 것은 실상 이런 요건해당성 여부의 판단으로 귀착한다. 대쪽 같은 판사니 타협을 모르는 검사니 하는 말도, 일단 이런 판단이 서면 누구의 말에도 움직이고 않고 자기 소신대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새로운 해법과 다각적 사고와는 거리가 멀고, 법이 정해 놓은 기득권의 보호와 기존 질서의 유지에 가깝다. 모든 문제를 이런 관점에서 보는 의식의 틀은 법률실무 중에서도 전통적으로 중시되는 쟁송에 이르러 극대화된다. 검찰의 수사와 기소도 결국 형사소송이라는 쟁송을 위한 절차다. 대립하는 당사자 중 한 사람은 이기고 그 상대방은 지는 것이 쟁송이다.

법률가가 정치와 얽혀 있다면
법 해석·적용에서 한계가 존재
정치적 야망 키우는 사람보다
검찰 중립 지킬 ‘총장’ 뽑아야

법률가가 꼭 정치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나 사법의 정치화라고 불리는 현상에 몰입될 경우에, 시비곡직의 판단에 치우친 법적인 마인드로 일을 처리한다면 어찌 될 것인가. 정치란 통합의 기술이다. 누군가가 완승하고 다른 누군가가 완패하기보다는 타협과 대화를 통해 적정한 선에서 이해를 조절하는 것이 정치다. 일정한 틀에 문제를 집어넣고 기냐 아니냐를 따지는 이분법에서는 타협도 통합도 없다.

사법자제론은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문제에서 사법이 그 문제를 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자제하는 사법철학을 말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사법이 가지는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고 이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 어떤 한계인가? 문제의 해결에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창조적 해법이 필요하고, 전문지식을 기초로 한 의사소통이 필요하고,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비전과 정치적 통찰력이 필요한데도, 여기에서 다툼의 대상이 될 만한 어느 부분만 떼어내어 그것이 기존의 법에 정해진 요건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를 따져야 하는 한계다. 준사법기관임을 자처하는 검찰도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의 통치구조는 헌법 제정권력과 그에 이은 개정권력의 일반의지를 받아들여 짜놓은 것이다. 쿠데타로 정치권력을 얻은 세력이 전횡하는 세상이 아니라면, 기본적 인권 등 몇몇 문제를 제외한 국정의 운영은 기본적으로 사법에 친하지 않다.

먼저 고쳐야 할 것은 정치권의 태도다. 정치권이 툭하면 사법에 문제를 들고 가서 판단이나 조력을 구하는 것은 딱한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헌법이 예정하지 않은, 권력의 근거 없는 이양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정치적 난제나 정책을 법의 눈으로만 보아 해결하고자 나서는 것도 민주정의 올바른 운영이 아니다. 더욱이 사법부의 구성원인 판사가 어느 순간 자기의 정치적 성향을 판결에 반영하거나, 행정부의 일원인 검사가 정치적 성향에 따라 수사와 기소를 전횡하는 경우의 폐해를 생각해 보라. 끔찍하지 않은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외치던 검찰총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제 대권을 향한 행로에 나서는 모양이다. 그의 무원칙함과 자가당착을 탓하기에 앞서, 정책적 문제에 수시로 수사의 칼을 빼어드는 행태가 꼭 검찰만의 책임이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사법의 정치화는 실로 정치의 사법화가 만들어 낸 행태다. ‘우리 윤 총장’의 재임기간 중 빚어진 갈등은 실상 여권이 착시의 결과로 자초한 위난이었다.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키우기보다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제대로 지킬 검찰총장을 뽑아야 한다. 형사사법제도의 개혁이라는 큰 틀의 문제도 앞으론 제발 여야가 융통성 있는 정치력을 발휘하여 해결할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면서 중립성의 외피를 뒤집어쓰고 덤비는 법률가들에게 맡기기엔 문제가 너무 중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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