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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은 밖에 있지 않다

“괴물은 누구인가?” 맥락을 멀찍이 떼어놓아도 그 자체로 비장한 무게가 느껴지는 물음이지만 나는 그 질문의 진부함에 위협당하는 인질처럼 프랑켄슈타인을 급하게 요약하며 정답을 외친다. “괴물은 바로 접니다. 혹시 현대인이신가요? 그렇다면 님도 괴물입니다. 우리는 괴물을 잡다가 괴물이 되거나, 괴물과 선을 그으면서 더 끔찍한 괴물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 님은 방임과 회피로 흉악한 괴물을 길러낸 무책임한 군중의 일원이실 수도 있어요.”

복길 자유기고가·<아무튼 예능> 저자

복길 자유기고가·<아무튼 예능> 저자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무수한 존재의 영역을 비추는 ‘괴물’ 이야기는 대부분 어느 시점에서 ‘궁극’이라고 적힌 거울을 꺼내며 독자의 낯을 비추고 느닷없는 성찰을 강요한다. “당신은 무결합니까? 확실해요? 피해자가 괴물에게 당할 때 당신은 대체 뭐했습니까! 휴대폰 보고 있었죠? 그러면 당신도 괴물입니다.” 괴물로 지목된 나는 억울한 마음에 조용히 절규한다. “갑자기 왜 날 보고 괴물이라는 거지? 엄연히 가해자가 존재하는 이야기인데? 걔가 괴물이니까 괴물을 응징하는 것에 집중해. 나는 선량하다고.”

지난달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괴물>의 포스터엔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문장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드라마는 20년 전, 누군가에 의해 훼손된 손가락만 남긴 채 사라진 연쇄 여성 실종 사건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인공인 이동식(신하균)은 해당 범죄 피해자의 가족이자, 사건을 축소하려는 배후가 지목한 유력 용의자였으며, 이제는 그 사건을 파헤치려 하는 경찰로 등장한다. <괴물>은 동식이 갖고 있는 세 겹의 레이어를 이용해 추리를 풍성하게 유도하고, 긴장감을 형성해 시청자와 심리전을 펼친다. 그러는 사이 <괴물>은 자연스럽게 ‘실종 피해자 가족’이라는 동식의 정체성에 포커스를 옮겨 놓는다.

“개발 좀 하려 했더니! 언제까지 방해할 거야! 양심도 없는 놈! 마을에서 썩 꺼져!” 마을 사람들은 동식과 동식의 가족이 20년간 겪고 있는 비극을 ‘집값을 떨어트리고 개발을 지연시키는 장애물’로 여기며 그들에게 증오를 퍼붓는다. 돌아오지 않는 딸을 하염없이 기다리다 기찻길에서 동사한 아버지, 그 모습을 목격하고 충격으로 정신을 잃고 몸져누운 어머니. 고통의 크기를 감당하지 못한 가족의 아픔까지 끌어안은 동식에겐 용의자라는 지워지지 않는 의심의 굴레까지 더해진다. 사람들로부터 반복적으로 멸시를 당하고, 가까운 이들에게서도 완전한 신뢰를 얻지 못한 채 범인을 찾는 것에만 집착하는 동식은 외로운 괴물이 되어 점점 피폐해져 간다.

동식의 파트너 한주원(여진구)은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는 냉철하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다. 무결하다면 가해자가 아니고, 무관하다면 피해자가 아닌 그의 이성적인 세계에서 동식은 의심할 구석이 많은 가장 유력한 용의자다. 그러나 그렇게 쌓아올린 경계심이 무색하게 동식과의 거리를 점점 좁히며 주원이 느끼는 것은 어쩌면 동식이 이 사건의 모든 고통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짊어지고 있는 또 다른 피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한 사건에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두 축만 있다고 믿는다면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무용하거나, 억지스러운 성찰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괴물>은 ‘괴물은 누구인가’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두 축 바깥에 좌표 없이 존재하는 사람들을 주목한다. 축의 주변에는 가해자의 지인과 피해자의 가족들이 있겠지만, 축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한 면에는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선을 긋고, 그들의 불길한 기운을 경계하던 내가 있을 것이다.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안고 있다. 선을 긋는 태도를 지우고 그 질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이어간다면 ‘괴물이 될 순 없다’는 의지 또한 당연하게 깃들지 않을까.

<복길 자유기고가·<아무튼 예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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