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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내성균과의 싸움, 죽자고 덤비면 유리한 건 세균이다

입력 2021.03.18 20:28

수정 2021.03.1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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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응빈 교수

고슴도치 끌어안기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까칠해서 대하기 어려운 사람을 ‘고슴도치’에 빗대곤 한다. 어떻게 하면 이들과 함께 잘 살아갈까? <고슴도치 끌어안기>라는 책에는 이러한 지혜가 담겨 있다. 이번 글의 연재 제목은 책에서 빌려왔다. 책에 나오는 방법 가운데 ‘고슴도치 본성을 이해하고 적당한 거리 유지하기’가 항생제 내성균 문제의 정곡을 찌르기 때문이다. 1941년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한 ‘항생제(antibiotic)’라는 용어는 ‘삶(bios)’을 ‘반대한다(anti)’는 뜻으로 미생물이 만들어 다른 미생물, 특히 세균을 자라지 못하게 하거나 죽이는 물질을 이른다. 이 말을 만든 미국 미생물학자 왁스먼(Selman Waksman·1888~1973)은 흙 속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미생물이 상대를 물리치기 위한 어떤 공격성 물질을 만들어낼 거로 생각했다.

실제로 왁스먼은 1943년, 마침내 ‘방선균’ 가문 소속 토양 세균에서 새로운 항생제를 찾아냈다. ‘스트렙토마이신’이라고 부르는 이 항생제는 앞선 페니실린이 치료하지 못했던 감염병에 즉효를 보였다. 이후 여러 항생제가 토양 세균에서 분리되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방선균 작품이다. 이렇게 다양한 ‘마법탄환’이 줄지어 발견되면서, 인류는 병원성 미생물과의 전쟁에서 곧 승리를 거두리라는 기대감에 더해 자만심까지 갖게 되었다. 그러나 미생물은 생각처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불의의 일격을 받았던 그들이 전열을 정비하여 ‘항생제 내성’이라는 방탄 시스템을 갖추고 반격해왔다(‘페니실린과 슈퍼박테리아’, 경향신문 2월19일자 14면 참조).

ESKAPE

E·S·K·A·P·E 세균들 엄습 땐
항생제 개발 속도 미처 못 따라가

‘ESKAPE’는 언뜻 ‘탈출하다’를 뜻하는 영어 단어 ‘ESCAPE’를 잘못 쓴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이것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주요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여섯 종류 세균의 학명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약어이다. 이들의 실명을 소개한다: 장알균(Enterococcus faecium),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 폐렴간균(Klebsiella pneumoniae),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Acinetobacter baumannii), 녹농균(Pseudomonas aeruginosa), 엔테로박터류(Enterobacter spp.).

2017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새로운 항생제 개발이 절실한 병원균 목록을 발표하면서 ‘ESKAPE’를 우선순위로 지정했다. 이들이 우리 주변 곳곳에 존재하는 흔한 세균인 데다가 ‘다약제내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다약제내성이란 보통 서로 다른 계통의 항생제 세 가지 이상에 내성을 보이는 경우를 말한다.

ESKAPE 세균의 위험성은 병원성 자체보다는 탁월한 환경 적응력에 기인한다. 말하자면, 이들이 감염병을 일으키는 능력은 비교적 낮지만, 인체는 물론이고 생활 환경에서도 잘 살기 때문에 감염을 일으키기 쉽다. 감염이란 미생물이 우리 몸속에 들어와 증식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때 그 결과로 생기는 건강 이상을 감염병이라고 한다. 이 말을 되새겨보면, 감염이 반드시 감염병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코로나19 사태로 이제는 일상용어가 되다시피 한 ‘무증상 감염’이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보통 건강한 사람에게는 ESKAPE 세균이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 그러나 면역 기능이 떨어지면 이들 감염에 취약해진다. 특히 ESKAPE 세균이 병원 내 감염을 일으키는 주범이어서 이들이 다약제내성을 띠게 되면 문제가 아주 심각해진다. 게다가 다약제내성 ESKAPE의 엄습이 이에 맞설 항생제 개발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지는 상황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해결사가 절실한 실정이다.

뜻밖의 해결사

파지들이 세균에 붙어있는 것을 보여주는 전자현미경 사진. 캡처 위키미디어

파지들이 세균에 붙어있는 것을 보여주는 전자현미경 사진. 캡처 위키미디어

세균만을 숙주로 삼는 ‘파지 요법’
첫 탄생 100년 후 새 해결사로 등장
유익균 안 건드리고 표적균만 타격

1917년, 프랑스 미생물학자 데렐(Felix d’Herelle·1873~1949)이 ‘이질균에 맞서는 미지의 미생물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파스퇴르연구소에서 이질균 배양을 하다가 아주 신기한 장면을 목격했다. 배양기 안에서 잘 자라고 있던 세균 배양액에 이질 환자의 분변 여과액을 첨가했더니, 배양액이 하룻밤 사이에 맑아진 것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세균(박테리아)을 먹어치운다고 직감하고, 그것에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라는 이름을 붙였다. 줄여서 간단히 ‘파지(phage)’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파지는 ‘먹는다’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이렇게 해서 세균만을 숙주로 삼는 바이러스가 세상에 데뷔하게 되었다.

논문 발표 당시부터 데렐과 몇몇 학자들은 세균 바이러스, 즉 파지를 세균 감염병 치료에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이른바 ‘파지 요법(phage therapy)’의 탄생이다. 기발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지만, 아쉽게도 항생제의 그늘에 가려져 버렸다. 제약업계가 항생제 생산에 몰두한 것도 파지 요법을 경제적 변방으로 밀어내는 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100년 후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2016년 미국 샌디에이고병원 중환자실에서 장염 치료를 받던 68세 남성이 ‘이라키박터(Iraqibacter)’라는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라키박터란, ESKAPE 가운데 하나인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가 이라크 전쟁(2003·3·20~2011·12·18) 동안 야전병원에서 많이 검출되어 갖게 된 별칭이다. 현재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는 슈퍼박테리아 감염병 환자를 구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담당 의사는 파지 요법을 택했다. 치료 효과는 차치하고 안정성도 장담할 수 없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보건당국을 설득하여 기어코 긴급 사용 승인을 받아냈다.

의료진은 파지가 세균 감염 부위로 퍼져 나가기를 바라면서 관을 통해 환자 위 속으로 바이러스를 주입했다. 심지어 파지 용액을 혈관에 직접 주사하기도 했다. 그때까지 미국에서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는 파격적인 치료 방법이었다. 다음날 환자에게 패혈성 쇼크가 왔고, 파지 주입은 즉각 중단됐다. 다행히 환자는 회복됐고, 쇼크 원인도 파지가 아닌 다른 세균 때문으로 밝혀졌다. 이틀 뒤 파지 요법이 재개되었고, 한 달이 지나자 고희를 바라보는 남성은 휠체어를 타고 바깥 공기를 쐬며 가족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지구상에서 가장 큰 기니피그였다는 농담도 건넸다고 한다. 때마침 프랑스 파리에서는 박테리오파지 발견 1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 행사가 열렸다.

보통 기생체는 숙주보다 훨씬 작지만, 그 수는 훨씬 많다. 세균은 지구 어디에나 있는 가장 흔하고 많은 생명체다. 따라서 특정 병원균을 공격하는 천적 파지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파지는 항생제 내성 문제를 푸는 해결사가 되어줄 수 있다. 파지 요법의 또 다른 장점은 숙주 특이성이다. 유익균과 유해균을 가리지 않고 파괴하는 항생제와 달리, 파지는 표적 병원균만을 타격할 뿐만 아니라 세균이 아니면 아예 건드리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파지는 다시 굴러떨어질 무거운 바위를 산꼭대기로 끊임없이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의 굴레에서 우리를 벗어나게(escape) 할 수 있을까?

현명한 선택

내성균 무조건 쫓는 공격보다는
유리한 환경 안 만드는 게 최선책

미생물 처지에서 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항생제는 일종의 감염병인 셈이다. 이전에 접한 적이 없는 새로운 감염병(항생제)에 노출되면, 대부분은 치명타를 입고 쓰러진다. 하지만 개중에는 살아남는 것도 있다. 돌연변이 덕분이다. 돌연변이 대부분은 해로운 영향을 미치지만, 드물게 이로운 돌연변이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를테면 항생제에 노출되는 세균 집단에서 항생제 내성을 부여하는 돌연변이는 큰 이익이 된다.

세균이 항생제 내성을 획득하는 또 다른 방법은 ‘수평 유전자 전달’이다. 쉽게 말해 세균끼리 유전자를 주고받는다는 얘기다. 인간을 비롯한 유성생식 생물은 세대를 거치며 부모에게서 자식으로만 유전자를 전달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기 때문에 이를 ‘수직 유전자 전달’이라고 부른다. 세균은 세포 분열을 통한 수직 유전자 전달은 물론이고, 다른 세균에게도 자기 유전자를 줄 수가 있다.

어떤 식으로든 일단 획득된 항생제 내성 유전자는 대물림되면서 계속 퍼져 나간다. 세균의 빠른 번식 속도 때문에 아주 짧은 시간만 지나도 새롭게 내성을 지닌 세균은 큰 무리를 이룬다. 여기에 놓쳐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이 숨어 있다. 항생제가 내성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원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항생제 공격으로 정상 세균이 사라지면 돌연변이 세균은 서식지를 독점해 번성하게 된다. 말하자면 항생제는 내성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게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 돌연변이는 우연히, 그러나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항생제 내성균의 발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선책은 내성균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이제 항생제 내성 문제는 인류의 건강 및 생존과 직결되는 글로벌 이슈가 되었다. 또한 새로운 치료제나 방법 개발만으로는 항생제 내성균의 확산을 막을 수 없다. 이에 WHO를 비롯한 국제기구가 중심이 돼 항생제 사용에 관한 통일된 지침을 만들어 국제 공동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보려면 지구시민 모두가 항생제 올바로 쓰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다. 세계 최초의 성문법으로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조항이다. 이런 처벌 방식을 정한 이유는 당시 무차별·무제한으로 행해지던 복수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막기 위함이었다. 다시 말해, 입은 손해만큼만 보복하게끔 법으로 제한해 더 큰 싸움을 예방하려는 목적이었다. 우리는 싫든 좋든 미생물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이따금 미생물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때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해 새것을 아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과잉 반응은 이 작은 고슴도치의 가시를 더 강하고 더 많아지게 할 테니 말이다.

▶김응빈 교수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16)내성균과의 싸움, 죽자고 덤비면 유리한 건 세균이다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 연구와 교육을 해오면서 미생물의 이야기 미담(微談) 중에 미담(美談)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미생물 변호사’를 자처하며 흥미로운 미생물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환경생물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SCI 논문 60여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등이 있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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