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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폭로함은 정의로운 복수이다

권력이 불순하고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면 폭력이 기승을 부린다. 우리 근현대사는 100년도 넘게 폭력이 지배했다. 일제강점기는 ‘헌병국가’였다. 백성들은 거대한 폭력에 무방비로 당했다. 1904년 대한제국을 찾은 스웨덴 기자 아손 그렙스트는 부산항에 내리자마자 일본인에게 두들겨 맞는 한국인들을 목격했다. 난쟁이처럼 작은 일본인이 회초리를 쥐고 한국인들을 쫓아다니며 때렸다. 이 광경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김택근 시인·작가

김택근 시인·작가

“부산역의 이 북새통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그 무리들 중에서 제일 왜소한 일본인이 키 크고 떡 벌어진 한 코레아 사람의 멱살을 거머쥐고 흔들면서 발로 차고 때리다가 내동댕이 치자, 곤두박질을 당한 그 큰 덩치의 코레아 사람이 땅에 누워 몰매 맞은 어린애처럼 징징 우는 모습이었다.”(<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 전 한국을 걷다>)

외국인 기자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보였겠지만 매를 맞는 사람은 하늘을 향해 통곡했을 것이다. 나라는 이미 그를 보호해 줄 힘이 없었으니 마냥 서러웠을 것이다. 조선을 병탄한 일본은 무단통치로 공포를 조장했다. 폭력은 모든 곳에 스며들었다. 극악무도한 ‘외래 폭력’에 책과 붓의 나라, 효자·양처·충신의 나라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일제가 패망했지만 폭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해방 이후에는 강대국들이, 한국전쟁 이후에는 독재정권이 폭력을 휘둘렀다.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 폭력에는 모방하고 싶은 욕망이 들어있다. 폭력이 스며있으면 알게 모르게 폭력에 감염된다. 직장, 집, 학교, 군대 등 어느 곳에나 폭력이 난무했다. 수시로 살기(殺氣)와 공포가 일상을 파고들었다.

고교시절 손바닥으로 얼굴만 가격하는 교사가 있었다. 학생들은 그를 피해 다녔고, 어쩌다 재수가 없어 걸리면 여지없이 안면을 강타당했다. 두발이 길다, 인사를 안 한다, 복장이 불량하다며 사정없이 때렸다. 그는 ‘미친Χ’라 불렸다. 안면 강타는 “아버지 용서해 주세요”라고 빌어야 멈췄다. 그에게 재수 없이 걸려서 무수히 맞았다. 아버지가 아닌 사람을 아버지라 부를 수는 없었다. 얼마나 맞았는지 정신이 아득해졌다. 얼굴이 피범벅이 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그는 교사였지만 교사가 아니었다.

그에게 폭력은 일상이었다. 어쩌면 폭력중독자였을 것이다. 세월이 흘렀지만 학창시절의 추억 한편은 피멍이 들어서 떠올릴 때마다 아프다. 그는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가 남긴 폭력의 상흔은 이렇듯 아물지 않았다. 어느 학교에나 이런 교사가 있었다. 교사들은 매를 들고 다녔고 아무나 때렸다. 교사가 학생을 패는 세상이었으니 학생들끼리는 오죽했겠는가.

폭력에는 반드시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 그래서 피해자는 복수를 벼르며 비수를 품는다. 또 모든 복수는 새로운 복수를 부른다. 복수의 연쇄반응은 사회와 집단 전체를 뒤흔든다. 어설픈 대응은 폭력의 불쏘시개가 될 뿐이다. 폭력의 본질과 속성을 탐구했던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는 ‘공적인 복수’만이 폭력이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사적인 복수와 공적인 복수가 원칙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지만 사회적인 면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즉 공적인 복수의 복수는 더 이상 복수당하지 않으므로 연속적인 복수도 끝나 확대의 위험을 피하게 된다.”(르네 지라르 <폭력과 성스러움>)

모두 공감하는 공적인 복수로 불순한 폭력을 응징해야만 비로소 폭력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음이다. 체육·연예계 폭력에 이어 학교폭력이 잇달아 폭로되고 있다. 당했지만, 알고 있었지만 상처가 덧날까봐 참았을 것이다. 이제 공적인 복수가 시작됐다. 착한 주먹질은 없어도 정의로운 복수는 있다. 한 사람의 영혼을 짓밟고 인생을 망친 자가 승자로 남게 해서는 안 된다. 폭력중독자는 언제 발작을 할지 모른다. 폭력은 모두의 문제이다. 폭력의 상처를 개인의 것으로 방치하면 언젠가는 폭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피해자의 고통을 보고 모두가 아파할 때 비로소 폭력을 추방할 수 있다.

폭력은 몸보다 마음에 상흔을 남긴다. 원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예방이 우선이다. 폭력을 막는 최상의 백신은 폭력에 대한 단호한 폭로이다. 이는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미래의 폭력까지 예방하는 숭고한 행위이다. 더 많은 이들이 공적인 복수에 동참해야 한다. 폭력은 먼 과거에 발생했어도 현재의 일이다. 또 방치하면 모두를 해치는 미래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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