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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정정’ 이후 마주한 고민

입력 2021.03.24 03:00

수정 2021.03.2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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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진료 차트의 내용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잘되셨어요?”

주어도 목적어도 모두 생략되어 있지만, 그도 나도 내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

“아니요. 안 됐어요.”

“아니, 이유가 대체 뭐예…?”

나는 입을 다물고 다시 진료 차트를 들여다보았다. 그래, 물어보나 마나 뻔하다. 아마도 그가 아직 남성 성기를 재건하는 수술을 하지 않았기에, 이번 판사는 성별정정 신청을 받아주지 않은 것이다. 그는 몇 년째 호르몬 치료를 받아온 성전환남성/트랜스맨(Transman, Female to Male Transgender)으로 주민등록으로는 여전히 여성이다.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2020년 2월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허가신청 사건 등 사무처리 지침’을 개정하여 “외부성기가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는지 여부”를 ‘조사사항’이 아닌 ‘참고사항’으로 하고, 이에 대해 ‘조사한다’를 ‘조사할 수 있다’로 개정하면서, 성별정정과 관련한 법적인 판단을 개별 판사들의 몫으로 지정하였다. 그래서 일선 판사들은 각기 다른 판결을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 지침을 곡해하는 이들은 “이제는 성전환수술 없이도 성별정정이 되니 말세”라며, “성폭력이 늘어나고 성적 질서와 가족 관계가 붕괴”될 것이라고 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이번 지침에서 참고사항으로 지정한 것은 ‘외부성기의 수술 여부’일 뿐이다. ‘내부성기 제거’는 여전히 법적인 성별정정을 위한 필수적인 요건으로, 성전환남성은 자궁난소적출술, 성전환여성은 고환적출술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는, 태어날 때 지정된 성별의 생식 능력을 지닌 상태로는 반대의 성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진정한 성별정정을 원한다면 음경성형술을 받아야” 한다며, “남성 성기(음경)도 없이 어찌 남자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도 한다. 나는 솔직히 음경성형술이나 질성형술과 같은 성전환을 위한 2차 수술을 쉽게 추천하기 힘들다. 있던 조직이나 기관을 없애는 것보다 없던 기관을 만드는 것이 훨씬 의학적으로 복잡하기 때문이다.

음경성형술을 예로 들면, 우선 요도로써 기능할 조직을 만들어야 하므로 고무관을 허벅지나 팔뚝에 심는 수술을 받은 후 이 상태로 1~2년 이상을 살아 조직이 숙성되도록 해야 한다. 그 후에는 조직을 떼어내어 음경 모양으로 만드는 유리피판술(Free Flap)을 해야 하는데 혈관과 피부, 근육을 모두 연결하는 큰 수술이다. 어렵게 연결한 피판이 괴사되어 썩거나 요도가 다시 막히는 일이 잦아, 지금까지 노력했던 몇 년의 세월이 허사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러니 정말 음경을 원하는 분들이라면 수술을 받을 수 있겠지만, 법적인 성별정정만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큰 수술까지 요구하는 것은 과도하다.

어느 트랜스젠더가 진료실에서 나에게 물었다. 다른 트랜스젠더들은 잘들 살고 있냐고. 자신은 수술과 성별정정 후 원하던 주민등록번호를 받고 취직도 했는데, 끝없는 허탈감에 빠져 있다고 했다. 인생에서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20대 초반 4~5년 세월을 성전환수술을 받을 돈 수천만원을 모으고 수술받아 성전환하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왔는데, 막상 목표를 이루고 나니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다는 말이 이해된다.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역할을 하며 살지를 고민해보지 못한 것이다. 성별정정이라는 산을 힘겹게 넘어야 해서.

성차별이 줄어들어 성별의 구분이 무의미해질수록 성전환수술이나 법적 성별정정을 원하는 사람들이 줄어들 거라는 예측도 있다. 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와 관계없이, 그저 나라는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성별에 따르는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살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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