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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정치

‘봄의 정치’는 지인 고영민 시인의 표제작이다.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봄이 오는 걸 보면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봄이 온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4월 재·보궐 선거 끝자락에 불현듯 ‘봄의 정치’를 묻고 싶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구상했던 이 시는 2년 전 출간됐다. 그와 오랜만에 통화했다. “봄이란 말만 들어도 따뜻해지잖아. 물론 현실 정치는 봄이 아니지. 그래도 조금씩 따뜻해지면서 봄을 향해 나아가는 거지.” 정치가 암흑기였던 그때, 그는 시민들의 분노를 미래라 읽었고 봄이라 불렀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4월 재·보선은 ‘봄의 정치’로 가는 길을 잃었다. 아니, 퇴행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구혜영 정치부 선임기자

구혜영 정치부 선임기자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박원순 전 시장의 성범죄가 촉발했다. 그러나 여권은 권력 자산을 총동원해 박 전 시장 옹호에 나섰다. ‘박원순의 향기’라는 말에선 그의 공을 그의 가해 행위를 지우는 데 이용하려는 결기가 읽힌다. 한쪽에선 피해자에게 “하필 왜 지금 기자회견을 하냐”며 의도를 묻는다. 자신의 일로 치러지는 선거에, 표가 걸린 선거 때 아니면 들은 체도 않는 정치권을 상대로 피해자가 정치적으로 구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진짜’ 비극의 탄생이다. 박 전 시장 사건 이후 온 사회가 성찰했던 성평등·젠더 문제는 흔적조차 사라졌다. 가부장제 사회의 ‘정상가족’ 규범을 따르는 조강지처란 말이 등장했고, 여기에 “버린다”는 수식어를 붙여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된 대상으로 끌어내렸다. 여성 후보를 엄마 리더십 틀에 가두고, 아줌마라 공격하는 몰상식한 발언까지 나왔다. 아마 남성 후보였다면 세대와 시대를 대표하는 ‘기수론’의 주인공으로 추어올렸을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서울의 미래가 달린 생태적 성찰 대신 규제완화와 대규모 개발 공약만 난무한다. 심지어 12년 전 여섯 명이 사망한 용산참사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후보는 사태 본질을 ‘임차인들의 폭력적 저항’이라고 왜곡했다. 용산참사는 난개발 사업이 빚은 비극이다. 이 후보는 당선되면 일주일, 한 달 안에 재개발 규제를 풀겠다고 공약했다.

여야의 백래시 경쟁은 토머스 홉스가 말한 ‘자연 상태’에 가까운 선거를 만들고 있다. 이 상황에서 민심의 분노는 더불어민주당을 향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찬반이 거의 유일한 선택지가 됐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이유를 잘 모르는 것 같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가 있긴 했지만 ‘왜 우리가 일방적으로 책임져야 하냐’고 항변한다. 사람들이 왜 민주당에 더 많이 화를 내는지, 왜 더 큰 책임을 묻는지 그들의 표정만 볼 게 아니라면 탄핵 이후 정치의 맥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탄핵은 야 3당 공조 체제 때문에 가능했다. 박근혜 정부의 독주, 우편향 국정교과서 추진 등 일방통행 정책도 권력을 끌어내린 요인이라는 점에서 탄핵 정신은 다원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혁명은 권력의 집중을 강화시킨다’고 했던 토크빌의 말이 예언이 될 줄이야. 집권 이후 민주당은 야당을 적폐세력으로 간주하고, 위성정당 창당으로 다당제를 허물었다. 탄핵 동맹 붕괴는 제3정당 소멸뿐 아니라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세력으로 회귀하는 후과도 초래했다. 총선 이후 ‘양극화’한 양당제가 공고해졌고 오로지 밀어붙이기 아니면 발목잡기 옵션만 있는 강대강 대치가 이어졌다. 양극화한 양당제는 정치가 감당해야 할 다양한 의제를 원천봉쇄했다. 여기에 검찰개혁, 적폐청산을 둘러싼 갈등은 거대 정당의 극한 대립에 정치와 법치의 갈등을 추가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유력 주자로 등장한 것이다. 지지율 5%를 넘는 후보가 없던 야권은 윤 전 총장 등장에 환호했고 지지자도 결집하기 시작했다.

4월 재·보선은 누적된 백래시 정치를 동반하고 왔다. 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선택의 기준이 민주당 심판이냐 아니냐밖에 없는 이유, 시민을 폭도라 하는 보수 후보가 심판받지 않는 이유를 외면하게 된다. 역사의 퇴행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이번에 민주당을 혼찌검 내야 한다”며 미래를 포기하지 않고 있음에도 민주당은 ‘상대가 나쁘니 우리를 찍어달라’는 구호만 반복한다. 분노와 미움의 근원이 어딘지 알아차릴 때도 됐건만.

봄의 정치가 아직도 유효한 거냐고, 봄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적이 맞냐고 오늘쯤 그에게 물으려 했다. 그러나 청와대 정책실장의 염치없는 처신을 본 뒤 연락을 접었다.

봄이 오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고 믿었던 그에게, 나는 차마 이 봄을 물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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