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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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4월13일 전국 최대 조폭 수장 잡히다
30년 전 오늘 경향신문에는 부산의 최대 폭력조직 ‘칠성파’ 두목이 수배 5개월15일 만에 붙잡혔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강환(당시 47세) 이야기입니다.
이씨는 폭력 행사를 배후 조종한 혐의로 1990년 9월 전국에 수배됐는데요. 그는 1989년 3월 행동대원에게 라이벌 조직인 ‘신칠성파’ 두목을 처리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행동대원은 신칠성파 두목을 생선회 칼로 난자해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혔습니다. 그 해 5월에도 이씨의 지시에 따라 생선회 칼로 신칠성파 중간 보스의 다리를 절단했습니다. 이씨는 잔인한 폭력 행위를 10여차례나 지시했다고 합니다.
칠성파는 영화 <친구>의 소재가 된 폭력조직입니다. 이씨는 1962년 칠성파에 가입하면서 폭력 세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그는 빠르게 조직을 키웠는데요. 70년대에는 반대파였던 ‘20세기파’를 제압하면서 칠성파를 부산 시내 유흥가의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었습니다. 80년대 중반엔 한 조직원이 ‘영덕파’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위기를 겪지만, 조직 개편 등을 단행해 1988년 ‘화랑신우회’를 결성하고 회장으로 추대됩니다.
부산 폭력조직의 ‘대부’로 자리를 잡은 뒤 이씨는 일본 야쿠자와 손을 잡았습니다. 그는 1990년 11월 ‘수원파’ 두목 최창식 등 전국 폭력조직 보스 21명을 대동하고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야쿠자 중 하나인 ‘가네야마구미’와 ‘사카스키’(주배) 의식을 벌이고 의형제를 맺었죠.
이후 이씨는 국내 폭력세계에서 입지를 굳히게 됩니다. 야쿠자의 조직관리 기법, 잔인한 범행 수법, 오락실·술집 경영을 통한 재정관리 등을 국내 폭력조직에 들여왔습니다. 또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사행성 오락기구인 일본식 구슬치기를 120여개 업소에 보급·판매해 폭리를 취했습니다.
1991년 검거 당시 이강환.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1년 4월13일자 경향신문
부동산 투기에도 손을 뻗쳤습니다. 이씨는 1988년 양아버지인 재일동포 이정윤씨의 돈 4억엔(당시 한화로 23억여원)을 들여와 국내 부동산을 사들였습니다. 토지거래신고지역인 부지를 신고 없이 매입하고, 부산시 서구 서대신동 일대 토지 1만6050평을 23억원에 구입한 뒤 1억3000만원에 사들인 것처럼 허위신고해 1990년 6월 국토이용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이미 1990년 6월에 구속됐는데 세 달 뒤 전국에 공개수배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씨는 그 해 8월 법원의 집행유예 결정으로 풀려났습니다.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폭력조직에 대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도피해왔습니다.
1991년 4월11일 서울 송파구 오금동 한 아파트 앞길에서 이씨는 검거됐습니다.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쳐 침을 맞으러 한의원에 들렀다 귀가하는 길이었죠. 잠복 근무 중이던 경찰의 불심 검문을 받고 100m가량 달아나다 붙잡혔다고 합니다.
이씨는 연행된 뒤 모든 혐의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습니다. “깨끗하게 손 씻고 살려고 씨름협회 부회장직까지 맡아 일해왔는데 면식조차 없는 아래 사람들의 싸움에 나까지 끌어들이냐”면서 말입니다.
이씨의 말과 달리 그의 위상은 폭력조직을 넘어서까지 대단했나봅니다. 검거 소식이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각 언론사에 사회 각계 인사들이 확인 전화를 걸었다고 하네요.
이씨는 1991년 구속 수감돼 8년간 복역했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수배됐습니다. 2000년 부산 모 나이트클럽 지분 싸움에 연루돼 구속됐고, 2010년에는 공갈 등 혐의로 수배돼 경찰에 붙잡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