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은 일찍이 벼슬자리를 들락날락했다. 관직에 나섰다 도망치기를 전부 다섯 차례. 전원시인의 표상답지 않은 과거였다. 애초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중국 위·진 시대 험한 벼슬길과는 너무도 맞지 않는 마음 약한 ‘초식남’이었다. 미관말직이지만 마지막 관직을 박차고 나가며 쓴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지금이 옳고 지난날은 틀렸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불안과 공포를 훌훌 털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홀가분함과 달뜬 마음이 가득하다.

김광호 기획에디터 겸 문화부장
벼슬길과는 이토록 맞지 않으면서 왜 그리 미련을 못 버렸을까. 그라고 명성에 대한 야심이 없었을까만 실상은 더 짠하다. “내 집이 가난해 농사만으로는 자급하기 부족했기”(‘귀거래사’ 서문) 때문이었다. 먹고사는 일 앞에선 벼슬길의 공포도 왜소하다.
벼슬, 즉 공직은 과거부터 공명의 대상 이전에 ‘호구지책’이었다. 물론 공직의 힘에 취해 단순한 ‘호구’ 이상을 탐하기도 했다. 공직은 배웠다는 이들의 전쟁터였다.
조선시대 당파는 사림(士林)들 간의 자리다툼에서 비롯됐다. 그 쟁탈 대상이 조정의 인사권을 담당한 이조전랑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공직 쏠림은 소위 ‘엽관’이란 형태로 제도 아닌 제도처럼 존재한다. 우리의 경우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가 7000개 정도 된다고 한다.
4·7 재·보선 이후 종종 맞닥뜨리는 질문이 있다. “1년 전 총선에서의 (여당의) 180석은 도대체 뭐지”라는 의문이다. 불과 1년 새 선거 민심이 그렇게 180도 변하는 게 가능하냐는 당혹감이다.
그렇다. 민심이 1년 새 급변할 리는 없다. 모든 정치적 패배의 원인은 ‘부패’ 아니면 ‘무능’이다. 정치 세력이 오만해도, 부패하지 않고 유능하면 심판받지 않는다. 나는 여당의 실패를 ‘정치적 부패’에서 본다.
‘정치가 부패한다’는 건 금전적 타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또한 부패이지만, 앞선 근원적 부패의 결과물일 수 있다. 정치적 부패의 핵심이자 출발점은 ‘자리의 독점’이다.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당 간 모든 투쟁은 본질적 목표를 위한 투쟁인 동시에 관직 수여권을 위한 투쟁”이라며 정당 간 경쟁이 ‘국가의 여물통(관직)’을 차지하려는 경쟁으로 부패할 것을 우려했다.
모든 정책의 제안·실행은 공직을 통해 이뤄진다. 따라서 권력 획득이 공직 독점으로 이어지면, 정책은 전체 공동체보다 사적 집단의 이익을 반영하는 쪽으로 타락할 위험이 커진다. 공직의 쏠림은 패거리를 만연시키고, 패거리는 갈등과 분노, 충돌을 낳는다. 부패하면 필연코 무능해진다. 이는 정치적 권위, 즉 국가·사회를 이끌 정당성을 사라지게 한다. 어떤 이들은 부정의·불공정으로도 볼 것이다. 이처럼 공직 독점은 모든 정치적·사회적 우환의 시작이다. 권력이 이를 부패로 잘 생각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민심은 부패의 징후를 ‘탐욕’에서 읽는다. 그 또한 1년 사이 것은 아니다. 촛불 과제의 실행을 명령하는 마음과 여권의 탐욕에 대한 의구심 사이에서 고민하던 민심의 저울추는 딱 총선까지였다는 의미다.
첫 징후는 정권 출발 때부터였다. 여권은 다양한 정치 세력들과의 연합 대신 ‘촛불 민심’의 권리를 “민주당 정권”으로 좁혀버렸다. 촛불에 함께한 중도적 정치 세력들이 범여가 아닌 ‘잠재적 범야’로 기우는 이유가 됐다. 정점은 총선 때 비례 위성정당이었다. 자신들이 내건 정치개혁 대의를 기만한 꼼수는 180석을 정치적 동력이 아닌 ‘심판 대상’으로 바꿔 놓았다. 정의당 등 진보정치의 우군들도 잃었다. 자리에 맞지 않는 인사를 등용하고, 작은 이익을 구하려다 ‘내로남불’의 덫에 걸리며, 무리를 지키려 패거리의 함정에 빠지는 우행들은 ‘탐욕’의 영상을 강화했다.
그렇게 보면 과거 권력 분점 모양새를 추구한 ‘탕평’은 일종의 공직 독점에 대한 알리바이였을 수 있겠다. 물론 군주는 탕평을 통해 정치 세력 간 ‘이이제이’식 견제도 도모했을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란 주권자가 ‘강제적 탕평’을 통해 정치 세력의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적 부패를 제어하는 주권자의 장치이기도 하다. 주권자의 지지는 ‘대리인(정권)’에게 공동체의 진보를 요구하는 정책적 지지이지,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총선 180석과 재·보선 결과는 정확히 그 주권자의 뜻을 보여준다. 주권자는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