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부추기며 언급한 ‘별의 순간’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에 대입하면 ‘당의 미래를 결정하는 별처럼 빛나는 역사적 순간’이라 할 수 있겠다. 송영길 민주당 신임 대표는 지난 2일 ‘별의 순간’을 품었다. ‘별의 순간’은 강렬하지만 허무하다. 송 대표에겐 내년 3월 대선이 첫 길목이다. 오래 반짝일 것인가, 이내 사라질 것인가. 지난 두 번의 대선에 답이 있다.

구혜영 정치부 선임기자
2002년 대선에서 새천년민주당은 후보단일화협의회(후단협) 악몽에 시달렸다. 그해 3월 민주당 대선 주자로 확정된 노무현 후보는 ‘YS 시계’ 발언과 지방선거에서 부산, 울산, 경남을 다 뺏기면 후보직을 내놓겠다고 한 뒤 전패하자 지지율이 급락했다. 후보 교체론이 나왔다. 한화갑 대표는 “후보를 재검토하자”고 했다. 민주당은 노 후보에게 대선 예산 집행권을 주지 않았다. 16대 대선 다음날, 노무현 당선자는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집권여당 대표에게 “물러나시죠”라고 권고했다. 후단협 파동은 민주당 분당, 열린우리당 창당 등 고비마다 길고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의 시작과 끝은 현재 권력(대통령 지지그룹)과 미래 권력의 충돌이었다. 정동영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선언하자 친노 독자후보론이 고개를 들었고, 유시민·한명숙 후보가 차례로 중도하차하며 이해찬 후보로 단일화했다. 당내에선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아도 세상 안 망한다”는 말까지 등장했다. 민주당은 18대 총선에서 81석에 그쳤고 한동안 내분의 소용돌이에서 헤맸다.
두 대선은 당 대표와 당이 대의를 저버리고,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직접 부딪치고, 대선 후보와 주류 세력이 결합하지 못하면 어떤 후과를 겪는지 고스란히 드러냈다. 특히 마지막 경우는 기시감을 낳고 있다. ‘문자 폭탄’ 논란으로 상징되는 강성 지지층 문제다. 4·7 재·보궐 선거 패인을 헤아리지 못하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다는 내부 성찰이 송영길 대표 체제를 만들었다. 그런데도 강성 지지층은 전대 결과를 부정하고 여권 지지율 1위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한 반감을 노골화하고 있다. 강성 지지층 문제는 공적 영역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기제, 다원주의 보장이라는 정치의 본질을 위배했다는 점에서 반정치적이다. 민주당엔 강성 지지층의 규모와 에너지에 견줄 만한 상대가 없다. 사적 증오에 기반한 이들의 목소리가 확대되는 이유다. 문자 폭탄은 “권력기관이 아니라 특정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시민·동료들에 의한 위협”(박상훈)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원팀 민주당’의 이면이다. 송 대표는 일찌감치 이 문제를 인지했다. 경선 룰에서 권리당원 비중을 고려하면 ‘무계파’ 선언은 효과적인 선거운동이 아님에도, ‘무계파’를 강조했다. 한 핵심 측근은 “강성 지지자 한 사람은 반대편의 한 사람을 낳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대선에선 치명타다. 이를 통제 못하는 권력이 신뢰받을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별의 순간’을 풀어 헤쳐 정권 재창출을 여는 문 앞까지 온 셈이다.
송 대표는 5선 중진 의원에 인천시장을 거쳤다. 정치적 무게만큼이나 자기 확신이 크다고 평가받는다. 잦은 설화도 이에 기인한다. 취임 직후 당 중심 대선을 강조했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줄 세우려 든다는 의미로 이해하는가 하면, 당대표라는 대선 주자가 추가될지 모른다는 의구심도 없지 않다. 일각에선 “대선 주자와 권력 분점을 시도할 것”이라는 걱정도 들린다. 송 대표의 과도한 성과주의, 독단적 리더십, 엘리트주의에 대한 우려다. 두 번째 화살(자기 정치)을 의식하면 첫 번째 화살(대선 승리)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쯤은 송 대표가 모르지 않겠지만 이런 걱정을 기우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그만큼 ‘송영길’의 벽은 기댈 순 없으면서, 허물긴 힘들다는 고백일 테니.
송 대표도 눈치챘을까. 2009년 출간된 자서전은 <벽을 문으로>다. 5·18 당시 생존자의 죄의식을 다룬 임동확 시인의 시집과 제목이 같다. 시집엔 사회주의 붕괴라는 폐허 위에서 90년대를 헤쳐나가지 못한 지식인의 슬픔이 배어 있다. 한 시대의 벽은 실금만으로도 성 같은 존재였다. 정치라는 벽은 구체적인 삶의 상처로 이뤄져 있다. 당원·시민들의 생채기는 따뜻하게 보듬고, 민주당과 스스로가 쌓은 벽은 과감히 부수며 나아가는 대표가 되길 바란다. 암중모색만으로는 ‘벽을 문으로’ 만들 수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