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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선생님의 스승의날

입력 2021.05.17 03:00

수정 2021.05.1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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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유명한 커피판매점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주문할 수 있는 기프티콘이었다. ‘피터/임금체불/○○학원/필리핀/2020’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발신인을 보며 누구일까 한참 생각했다. 이주민센터에서 전화로 첫 상담을 하는 경우 사건 내용을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는 상황이 많아서 연락처를 저장할 때 사건의 내용과 국적, 상담 연도 등을 적는 습관이 생겼다. 발신인도 전화 법률상담을 했던 이주민인데, 이름을 보고 얼굴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프로필 사진을 몇 장 넘기다가 교회 앞에서 환하게 웃는 사진을 보고서야 기억이 났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피터는 지방에 있는 작은 영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필리핀에 있을 때 알고 지내던 한국 사람의 소개로 학원 원장을 소개받았고, 일단 관광비자로 한국에 입국하면 학원 강사 비자로 바꾸어 주겠다는 원장의 말을 믿고 한국에 입국했다. 잘못된 정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영어학원 또는 학교에서 원어민 강사로 일하는 외국인 선생님은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회화(E-2)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이는 해당 외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국가 출신이어야 한다. 영어의 경우 미국, 영국, 뉴질랜드, 호주 등에 한정되고 필리핀은 해당되지 않는다. 물론 예외적으로 E계열 비자를 가진 유학생의 경우 영어능력 등을 고려하여 회화강사로 취업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이것도 관광목적의 단기비자에서 변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원을 운영하는 사업주가 이러한 내용을 몰랐을 리 없다. 좋은 사람이었다는 원장님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지금도 알 수는 없지만,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외국인 등록을 하기 전엔 통장을 만들지 못해서 월급도 현금으로 절반만 주었다. 처음에는 월급을 다 받지 못했다는 임금체불 상담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체류자격 변경을 위한 출국과 재입국 절차를 지원했다. 사업주와 몇 차례 전화를 통해 미지급 임금을 받고, 다행히 일찍 상담을 한 덕분에 미등록 상태가 되기 전 출국을 할 수 있었다. 간단한 사건이었다. 출국하기 전, 필리핀으로 돌아가면 이후 한국에 공부를 배우러 다시 입국할 예정이라는 정도가 마지막 통화로 기억된다. 보내온 기프티콘에 함께 ‘변호사님 스숭의날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도 있었다. 오타마저 귀여웠다.

1년 만에 통화를 했다. 그는 지금은 경기도에 있는 한 대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주말이면 교회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도 하고 있었다. 지난 주말 교회 아이들로부터 ‘스숭의날’ 축하 파티와 선물을 받았다고 한다. 필리핀에서는 스승의날이 10월인데, 한국에서 외국인으로서 환대를 받으니 감동해서 눈물이 났다는 그에게 괜스레 ‘스승’이라는 발음을 교정해주며 나한테는 왜 선물을 보냈느냐는 우문에 우린 모두 서로에게 선생님이라는 현답을 주었다. 고향을 떠나 우리네 공동체에 함께 사는 이주민들이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는 순간이 참 소중하다. 언젠가부터 그런 상식적인 관계가 쉽지 않다는 것을 매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부색, 언어, 국적에서 자유로운 평범한 이웃들의 별것 아닌 평범한 일상이 지켜지는 것, 그것이 공존과 평화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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