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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방사선 피폭으로 첫 산재인정 승무원, 질병판정서 보니

조문희 기자
2011년 9월 17일(현지시간) 마다가스카르 남쪽에서 호주 북쪽으로 흐르는 오로라를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바라본 모습. 오로라는 지구 자기권에 들어온 고에너지의 양성자와 전자가 고층 대기의 입자들과 충돌한 후 충돌 전후의 에너지 차이만큼 빛을 내는 자연적인 방전현상의 일종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2011년 9월 17일(현지시간) 마다가스카르 남쪽에서 호주 북쪽으로 흐르는 오로라를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바라본 모습. 오로라는 지구 자기권에 들어온 고에너지의 양성자와 전자가 고층 대기의 입자들과 충돌한 후 충돌 전후의 에너지 차이만큼 빛을 내는 자연적인 방전현상의 일종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북극 항로를 비행하는 항공기에 수년간 탑승하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대한항공 전직 승무원 A씨가 법령상 허용치보다 낮은 방사선 피폭량에도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근로복지공단은 A씨의 피폭량이 보수적 관점에서 산출됐다고 보고, 항공사 승무원의 우주방사선(태양 또는 우주에서 발생해 지구로 들어오는 방사선) 피폭에 따른 백혈병을 처음으로 산재로 인정했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24일부터 항공승무원의 피폭 방사선량 안전기준을 기존 연간 50mSv(밀리시버트)에서 연간 6mSv로 낮춘다고 23일 밝혔다.

경향신문이 이날 변재일 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 질병 판정서’를 보면 질병판정위원회는 지난 17일 “A씨의 사망은 업무상 질병에 따른 사망으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위원회에 따르면 A씨의 방사선 피폭량은 5년7개월간 총 18.67mSv로 산출됐다. 원자력안전법, 생활주변방사선안전관리법 등 관련 법령에 따르면 방사선 작업종사자의 경우 방사선 노출 허용치는 연간 50mSv, 5년간 100mSv를 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위원회는 판정서에서 “근로자 상병의 업무관련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면서도 “역학조사에서 산출한 고인의 누적 방사선량은 보수적 관점에서 산출된 수치”라고 판단했다. 위원회는 “우주방사선의 측정 장비와 피폭량의 예측 모델에 한계가 있어 고인의 누적 방사선 노출량은 1.4~2.1배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며 A씨의 산재 여부를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위원회는 특히 “국내외 연구에서 표본수의 한계는 있으나 타 직업군 또는 일반인구와 비교해 항공종사자의 혈액암의 발병위험을 완전히 부인할 수 없다”며 100mSv 이하 저선량의 방사선 노출로도 암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고인이 만 31세 비교적 젊은 나이에 상병이 발생했고, (우주방사선) 노출기간이 5년 이상으로 방사선 유발 암의 잠복기를 충족하는 점을 고려하면, 고인은 업무 중 상당량의 방사선에 노출된 것으로 보이므로 고인의 상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2009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A씨는 약 6년 간 객실 승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미주 노선 북극항로를 비행하는 업무를 맡았다. 총 1176시간 가량 북극항로 비행에 투입된 그는 2015년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백혈병은 혈액 또는 골수의 혈액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혈액암의 일종이다.

A씨는 우주방사선에 피폭되고 야간·교대 근무에 시달리는 등 이유가 발병에 영향을 미쳤다며 2018년 산재신청을 했다. 그는 지난해 5월 신청 결과를 보지 못하고 숨졌다.

항공 승무원의 방사선 피폭이 산재로 인정된 것은 A씨가 처음이다. A씨를 대리한 김승현 노무사는 “A씨는 생전 산재 신청 결과를 받고 싶어했지만 조사에 3년이 걸려 사망 후에야 산재가 인정됐다”면서도 “판정 내용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방암 등 사례를 겪은 같은 회사 전·현직 승무원들도 산재를 신청하거나 산재신청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판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김 노무사는 “위원회는 ‘인과관계가 낮다’고 하지 않고 ‘근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그동안 승무원의 방사선 피폭에 대해 다수 표본을 장기 측정한 연구결과가 없었기 때문”이라면서 “정부 차원의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항공 승무원의 방사선 피폭량이 낮지 않다는 지적은 예전부터 이어져 왔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박상혁 의원이 국토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승무원 전체 평균 피폭량은 각각 2.82mSv, 2.79mSv로 원자력발전소 종사자 평균(0.43mSv)보다 훨씬 높았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항공 승무원 1000여명의 평균 피폭량은 4mSv을 넘어 원전 종사자의 10배에 달했다.

국토부는 ‘승무원에 대한 우주방사선 안전관리 규정’을 개정해 오는 24일부터 항공 승무원의 피폭 방사선량 안전기준을 기존 연간 50mSv에서 6mSv로 낮춘다고 23일 밝혔다. 임신한 여성 승무원의 경우 피폭량 한도는 연간 2mSv 이하에서 1mSv 이하로 낮아진다.

변 의원은 “다른 방사선 작업 업종에 비해 높은 방사선 피폭량을 보이는 항공사 승무원들이 보다 체계적으로 보호될 수 있도록 우주방사선 안전관리 체계를 개선하는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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