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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말을 믿어도 될까요?

입력 2021.05.26 03:00

수정 2021.05.2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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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화이부동]당신들의 말을 믿어도 될까요?

더불어민주당 내 현안 중 하나는 대선 경선 일정이다. 민주당 당헌은 대통령 선거일 ‘180일 전’까지 후보 선출을 마치도록 규정하고 있기에 당헌에 맞추려면 늦어도 7~8월 경선을 치러 9월 초 후보를 확정해야 한다. 그런데 일부 의원들이 야당에 비해 너무 일찍 후보를 확정해서 얻을 이득이 없고, 예정에 없던 4월 재·보궐 선거에 코로나 사태까지 겹친 점을 이유로 들면서 두 달 정도 연기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이른바 ‘친이재명 진영’은 당헌대로, ‘친문 진영’은 연기론을 주장하고 있다. 친문 진영이 “연기할지 말지 전 당원 투표로 결정하자”고 한 것에 대해 ‘친이재명 진영’은 “유불리에 따라 정략적으로 경선 일정을 흔드는 순간 내전(內戰)”이라며 반발했다. 지난 2월부터 벌어진 이 갈등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일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각 후보 진영의 소리 없는 전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런 유형의 갈등이 벌어졌을 때 조정을 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원로일 게다.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원로의 가치가 추락하긴 했지만,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민주당에 대해 사심 없이 애정 어린 쓴소리를 자주 한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남다르다. 그는 “이걸 자꾸 계파적 시각에서 친문이 이재명 경기지사가 싫어서 다른 사람을 옹립할 시간을 벌려고 그런다고 하는데, 꼭 이런 시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라며 “이 지사가 당에서 알아서 하란 식으로 대범하게 나가면 지지율이 좀 많이 올라갈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이 갈등이 평화롭게 잘 해결되길 바라는 입장에서 유 전 총장의 해법에 공감한다. 이 해법이 받아들여진다면 우리 모두를 위해 매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갈등이 격화되면 민주당에 자해적인 결과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정당정치에 대한 국민적 염증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외신뢰도가 중요한 집단일수록
규칙을 바꿀 때는 신중해야 한다
선거법 등 전과가 많은 여권서
대선 경선 연기론 논란이 이어진다
‘내로남불’이 속성이 된 문 정권
신뢰 문제, 두렵게 받아들여야

만약 이 해법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 썩 어울리는 용어는 아니지만 이른바 ‘비용편익분석’을 통해 결론을 내려보는 건 어떨까? 경선 연기가 민주당 전체에 장기적으로 이익이 될지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앞으로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어떤 합리적 판단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경선 연기의 장단점을 동시에 살펴보는 게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다.

연기론자들이 내세우는 이유를 타당한 것으로 간주한다면 그게 바로 장점이겠지만, 단점은 없을까? 일반적으로 규칙이나 약속이란 건 바꾸는 게 좋을 법한 상황에 자주 직면하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자신에 대한 신뢰도를 고려해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규칙이나 약속을 지킬 때가 많다. 어떤 게 더 나은 건지 단언할 수는 없지만, 대외 신뢰도가 중요한 집단이라면 규칙이나 약속을 바꾸는 걸 매우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특히 어떤 사안이 임박한 시점에서 곧장 적용할 수 있는 규칙이나 약속 변경은 더욱 그렇다. 변경 제안자의 수혜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개정의 효력 제한 원칙’이 광범위하게 통용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특히 잦은 규칙·약속 변경의 전과가 있는 집단이라면 더욱 그렇다. 유감스럽게도 민주당은 그런 전과가 많은 집단이다. 몇가지 주요 사례를 살펴보자. 2019년 말 민주당 등 범여권이 야당의 반대 속에 강행 처리한 선거법은 어떤가. 이에 대응해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미래한국당이라는 위성정당을 창당하겠다고 하자, 민주당은 “해괴한 방식, 괴물, 꼼수”라며 “국민 눈을 속이는 위성정당은 국민 모독”이라고 맹비난했다. 물론 나중에 민주당도 스스로 “해괴한 방식, 괴물, 꼼수”를 동원하는 “국민 모독”에 동참했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공수처법)’도 비슷한 경로를 걸었다. 민주당은 공수처법의 통과를 위해 “야당의 비토권이 확실히 인정되는 방향으로 돼 있기 때문에 집권 여당이 또는 대통령이 절대 공수처장을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다”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공수처법을 강행 처리해놓고도 야당의 비협조로 상황이 여의치 않자 40여일 만에 결국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시키는 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야 말았다. 여권은 그렇게 해서 만든 공수처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이젠 공수처를 비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당 대표 시절 정치개혁을 위해 만든 당헌 96조 2항은 어떤가. “민주당 소속 공직자의 중대한 잘못으로 재·보궐 선거가 치러질 경우 후보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해놓고, 5년 후인 2020년 11월 전 당원 투표를 실시해 그 개혁 조치 뒤집기에 나서지 않았던가. ‘박원순·오거돈 사건’으로 서울과 부산에서 치러질 2021년 4·7 재·보궐 선거에 후보를 내보내겠다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무리해서 얻은 결과는 참패였다.

선거법과 관련해 ‘국민 모독’을 저질러 놓고도 제21대 총선(2020년 4월15일)에서 압승을 거두었기에 ‘이번에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밀어붙였을 게다. 하지만 당시 유권자들이 민주당의 추태를 곱게 보았던 건 아니다. 총선 결과는 ‘K방역’의 성과였을 뿐이다.

어느덧 문 정권의 상징이자 속성처럼 돼 버린 ‘내로남불’만 해도 그렇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내로남불의 덫을 어느 정도나마 피해갈 수 있음에도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다. 최근 사례 하나만 살펴보자. 문 대통령은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인사 문제와 관련해 “야당에서 반대한다고 해서 저는 검증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인사 문제 질문은 충분히 예상되었던 것일 텐데, 참모들은 도대체 무슨 준비를 한 건지 모르겠다.

문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에 인사 문제와 관련해 무슨 발언을 했던 건지 점검은 한 건가? “(추천과 검증에) 실패하고서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청와대의 모습이 기이하게 느껴진다”거나 “만약 우리 주장(사퇴)을 야당의 정치공세로 여긴다면 중립적이고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기관에 여야 공동으로 여론조사를 의뢰하자”고 한 말을 염두에 두고 답변을 준비했느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5대 인사원칙’, 집권 이후 내세운 ‘7대 인사원칙’을 지켰는데도 야당이 반대했다는 건가? 약속을 했던 그때와 지금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려는 시도라도 하면서 그런 말씀을 하셔야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수십번 반복된 패턴이다. 대통령을 비롯해 정권 고위 인사들의 예전 발언과 나중에 180도 달라진 발언을 비교하면서 비판하는 패턴이 4년 내내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그러거나 말거나’ 태도로 일관하고 있으니 세상에 이런 ‘강심장’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과거에 무슨 말을 했건, “우리는 선한 권력이기 때문에 선한 지지층의 지지만 받으면 그만이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정권의 신뢰 문제를 심각하게, 아니 두렵게 생각해야 한다.

일부 지지자들도 과도한 정파성의 덫에 갇힌 건 아닌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겠다. 정파성엔 두 종류가 있다. 첫째, 특정 정치집단의 가치와 비전에 대해 지지를 하면서도 그걸 실현하는 방법론에 대해선 감시자의 자세를 갖고 비판도 할 수 있는 정파성이다. 둘째, 특정 정치집단의 가치와 비전은 물론 모든 방법론에 대해서도 무조건 지지를 하는 정파성이다. 후자의 정파성은 전자에 비해 추진력을 극대화하는 등 여러 현실적인 장점이 있지만, 특정 정치집단이 잘못된 방법의 길로 나아갈 때 제어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개혁 열망이 강한 지지자일수록 후자의 정파성이 강한데, 이런 정파성이 지배하는 정치는 속된 말로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다. 늘 그런 건 아닐망정 다수 유권자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방법론이다. 가치와 비전은 추상적인 데 반해, 방법론은 갈등의 형식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떤 정치적 행위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응이 즉각 나타나는 건 아니다. 그 행위를 압도할 수 있는 다른 변수가 나타나면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만, 이미지는 강하게 남는 법이다. 그런 이미지가 누적되면 이런 말을 듣게 된다. “당신들의 말을 믿어도 될까요?” 문 정권의 모든 구성원들이 신뢰 문제에 위기의식을 갖고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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