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서른 살에 가까워가는데 졸업을 못한 채 아직 대학생이에요. 주변에 취업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알바 자리도 없다 하고요. 가상통화에 몰두하거나 빚내 주식에 투자하는 20대가 많다고 걱정들 하는데 저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차기 대선도 경제 대통령이 화두겠지요. 하지만 지금 대선주자들 공약을 보면 현금주기 공약밖에 눈에 안 띄네요.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 젊은이들을 위한 미래 먹거리는 대체 뭔가요.”

오관철 경제에디터 겸 산업부장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는 아들을 둔 A씨의 말이다. 청년층 일자리 문제의 심각성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전문가들은 잠재적 구직자를 포함한 체감실업률 기준으로 청년층(15~29세) 4명 중 1명꼴로 실질적 실업상태에 있다고 본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3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국내 니트족이 지난해 43만6000명으로 전년보다 약 8만5000명(24.2%)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니트족은 교육을 받지 않고, 일자리도 없으며, 직업훈련에도 참가하지 않는 청년들을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쉬고 있다는 뜻이다.
A씨의 말을 들으면서 한국 사회가 미래 먹거리 발굴 노력은 소홀한 채 거창하고 해법이 도출되기 어려운 관념적 이슈에 정력을 허비해온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세계 각국이 해외에 나가 있는 자국 기업을 국내로 끌어들이고, 외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는 ‘리쇼어링’ 정책을 펴고 있지만 한국은 더디기만 하다. 얼마 전 한·미 정상회담에서 국내 4대 그룹이 미국에 44조원 투자 계획을 밝히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은 걸 마냥 흐뭇해할 상황은 아니다.
글로벌 경제에서 저성장이 뉴노멀이 된 지 오래고 불평등 심화와 성장 둔화는 상당수 국가들이 겪는 공통적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제 역동성과 함께 일자리 창출 능력이 떨어지는 걸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체념하며 받아들이기엔 상황이 심각하다. 첨단기술 경쟁에 사활을 건 미국과 중국의 움직임만 봐도 세계 경제는 거대한 분기점을 맞고 있음이 분명하다. 변화의 폭과 방향성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불안감은 더욱 크다.
“반도체가 지난 20년 한국 경제의 효자산업이었지만 몇년 뒤에는 어찌될지 모른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후발주자는 영원히 뒤처진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지 못하면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처에서 경고음이 들린다. 대부분 제조업에서 중국에 밀리고,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서 선진국과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면 수년 뒤 한국 경제의 모습은 정말 아찔해진다.
내년 3월 대선까지는 사실상 미래 권력자들의 시간이다. 차기 대통령에게는 급속도로 재편 중인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해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주어져 있다. 대선주자들은 한국 경제의 장기적 성장전략과 정책방향을 구상하고, 이를 설득력 있게 국민들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1000만원 세계여행비’ ‘3000만원 사회출발자금’ 등의 공약이 여당 대선주자들에서 나오는 걸 보면 비전보다는 단기적인 표 얻기에 마음이 가 있는 건 아닌가 싶다.
대선 공약의 주요 어젠다로 미래 먹거리 창출 방안을 담고, 병든 한국 경제를 치유하기 위해 담대하게 큰 틀을 짤 수 있는 대선주자가 떠오르길 기대한다. 그래서 집권 후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수 있도록 정부 조직을 가다듬고, 민간부문의 활기를 이끌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특히 대선주자들이 정보통신기술(ICT) 전략가들을 많이 접하고 급변하는 산업현장도 자주 찾길 바란다. 그러나 단순히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이벤트식 행사에 그쳐선 ‘친기업 쇼’란 비판을 듣기 십상이다.
역대 대선에서 경제 대통령을 언급하지 않은 후보가 드물었고, 대부분은 성장동력 발굴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작 가시적 성과는 미흡했다. 미래 먹거리 발굴은 단순히 산업정책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다. 경제·산업은 물론 노동·교육·환경 등 다방면에서 포괄적 구조개혁이 맞물려야 가능해진다. 도전적 기업가 정신의 회복과 확산은 물론 중견·중소기업, 스타트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동반성장의 기반도 강화되어야 한다.
이런 일을 해내려면 그야말로 국가 지도자의 ‘빅 디시전’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지지층의 기득권 해체작업에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과연 어느 후보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다음에는 제대로 된 ‘일자리 대통령’을 봤으면 하는 게 A씨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