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에게 분노하는가

이총희 회계사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 임용 공고를 찾아보고 있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인해 신규 채용 자체가 많이 줄기도 했지만, 전공에 맞는 분야가 있는데도 지원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채용 분야가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국립대 교원은 특정성별이 4분의 3을 초과하지 않도록 법이 개정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이총희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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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성별의 쏠림을 막고자 하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전체’를 기준으로 한 할당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물론 빠른 해결을 위해서는 전체를 기준으로 할당하는 것이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이것이 세대 간의 공정한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일정비율을 맞추기 위해 여성만 뽑으면 현세대의 여성은 수월하게 진출할 수 있지만, 다음세대의 여성들은 불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 현재 10명이 모두 남성인 상황에서 3명의 퇴직에 따라 신규 인력을 전부 여성으로만 뽑으면 7 대 3의 성비가 된다. 이 경우 3명을 연달아 여성으로 채용했으니 그 직후에는 다시 남성을 뽑을 가능성이 높다. 여성의 임용 비율을 점차 높인다고 해도, 할당제 도입 초기에 뽑은 3명의 정년까지는 여성의 비율이 높다. 그러면 이들이 퇴직할 때는 다시 성비를 맞추기 위해 남성만 뽑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란도 비슷한 맥락이다. 같은 업무에 대해 같은 대우를 해야 한다는 당위에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모든 이가 정규직이 되고 나면, 한동안은 사람을 뽑지 않을 것이고, 다가오는 세대는 더 심각한 취업난을 겪게 될 것이다. 성별·처우를 둘러싼 공정함의 문제가 세대 간의 불공정 문제와 충돌하는 지점이다. 계속해서 경제가 성장하고 일자리가 늘어가는 동안에는 세대 간의 불공정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겠지만 성장이 지체되고 일자리가 축소되어가는 현실에서도 이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젊은 세대가 반발하는 것이다. 물론 축소사회를 살아감에 있어 자신의 입장만 고수할 수는 없고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여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공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면 타인에게 시키지 말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정치의 영역이야말로 할당제를 시작하기에 최적인 영역이다. 정규직인 교원사회는 정년제라 성별할당이 세대에 불공정하지만, 정치는 임기제라 할당제를 하더라도 크게 불공정하지 않다. 21대 국회의 여성비율은 19%이고, 광역단체장도 여성도지사가 있었던 적이 없다. 여성 대통령이 나온 것도 한 번뿐이다. 이렇게 봐도 할당제를 시급히 도입해야 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국회나 지자체 선거에서부터 연령과 세대별로 할당제를 도입한다면, 당신들이 꿈꾸는 평등에 대해 젊은 세대들도 진정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의원은 586세대 용퇴론에 대해 모욕적이라고 반응했지만, 다선의 남성들이 자신의 철옹성은 지키면서 다음 세대에만 성평등을 외치는 것은 모순적이다. 젊은 세대가 분노하는 것은 성평등과 같은 대의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자신들이 외면하는 대의를 젊은 세대에게 강요하는 모순에 대한 분노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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